오늘 만나볼 가족은 멤버십이 시작된 11월부터 한 달 넘게 일상 속에서 열심히 실천하고 계시는데요.
막내의 나눔 교육을 위해 시작했던 일이 가족 전체의 나눔 문화가 되었다고 해요. 앞으로 주변에 체다카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소리네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체다카함을 꾸미고, 돈을 모으는 즐거움
Q. 체다카를 가정 안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계시나요?
A. 저희 가정은 11월부터 체다카함을 비치해두고 일상의 작은 기부를 실천하고 있어요. 가정예배 때, 혹은 아이가 집안일을 돕거나 착한 일을 했을 때마다 수시로 작은 용돈을 주고 체다카함에 넣도록 하고 있죠.
7살 저희 막내는 체다카함을 꾸미고 만드는 일부터, 체다카함에 돈을 모으는 일, 모은 돈을 사용하는 일 모두 매우 적극적이고 너무나 즐거워해요. 집안에 돈만 보이면 체다카함에 넣으려고 하고, 친척들이나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도 체다카함에 얼른 넣고 싶어 한답니다.
저금하는 기쁨, 돈의 가치를 느끼는 귀중한 배움
Q. 기쁜 마음으로 기부를 실천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많은 걸 느끼셨을 것 같아요.
A. 네, 아이들에게는 적은 돈을 모아서 큰돈을 만드는 것도 흥미 있는 경험이고, 그 돈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는 법을 생각하고 훈련하는 것도 귀중한 배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첫 번째 달에 모은 돈을 누구에게 기부할지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보며 매우 행복해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동안 어려운 친구들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으면서 마음 아파했던 적이 많았는데, 이제 매달 조금씩이라도 그 친구들을 내 힘으로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이난거죠.
Q. 첫 번째 체다카는 어떻게 실천하셨나요?
A. 첫 번째 달에 돕고 싶었던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어요. 화장실도 없는 낡고 곰팡이 피는 지하에살고 있었죠. 그 친구에게 편지도 미리 쓰고, 아주 난리가 났었죠. 그런데 그 친구가 이미 수많은 다른 가정의 도움을 받아 깨끗한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그 돈은 아프신 할머니와 혼자 사는 다른 언니를 돕는 일에 첫 번째 달의 기부금을 보냈어요.
나눔을 실천하는 손녀의 모습에 할머니도 기부에 동참
Q. 일상 속에서 체다카를 실천하며 가정 안에 생긴 또 다른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A. 막내 아이가 작은 용돈을 모아서 기부하는 일을 신나게 하는 걸 보고 함께 살고 계신 아이의 할머니가 감동을 하셨어요. 체다카함에 기부하라고 종종 용돈을 주곤 하시더니, 이번 연말에는 본인께서도 선한 일에 기부하고 싶으시다며 꽤 큰 돈을 맡기셨어요.
매달 정부에서 복지수당으로 나오는 돈을 쓰지 않고 모아두셨었는데, 그 돈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고 싶다고 하신 거죠. 그 돈은 ‘국경 없는 의사회’와 ‘더펠로우십’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돕는 캠페인에 보냈어요.
작은 기부 습관이 세상을 바꾸기를 바라는 마음
Q. 마지막으로, 일상 속 나눔의 실천, 체다카에 대해 한마디 해주세요.
A. 성경에서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는데요. 그건 기부가 자신의 자랑이 되면 안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 가정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이유는, 자발적인 나눔과 그 나눔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기쁨이 되는지를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우리 가족의 작은 기부 습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 될까요. 그 놀라운 변화의 실천을 오늘부터 시작해보세요. 체다카 패밀리는 성경적 자선과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경적 일상문화 실천법, 함께 해요!
일상 속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체다카 패밀리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가족은 귀하고 소중한 1호 체다카 패밀리예요. 기존에 더펠로우십을 통해 정기후원을 하던 중 이 멤버십을 알게 되어 처음 시작하게 되셨다고 하는데요! 평소 가지고 있던 자선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자연스레 어린 두 자녀의 나눔 교육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해요. 나눔이 습관이 되는 날까지 체다카를 계속하고 싶다는 유빈·현빈이네 가족의 이야기를 체다카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부모에서 자녀에게, 자연스레 이어지는 나눔
Q. 평소 나눔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A. 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눔을 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남편도 저와 같은 생각이라 꾸준히 여러 비영리단체 정기 후원을 이어오고 있어요.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땐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었죠.
아무래도 지금 저희 부부가 비영리 단체 모금 영역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다 보니, 더욱 자선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기부, 나눔, 자선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요.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 아빠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야’라고 설명하기도 해요. 나눔은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저희 부부의 평소 생각이었는데, 체다카 패밀리 멤버십에 딱 그 말이 쓰여 있는 걸 보고 시작하게 되었죠.
Q.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닮는다고 하는데, 자녀에게 나눔 습관을 물려주고 계시네요.
A. 아무래도 저희가 평소에 후원을 여러 곳에 하기도 하고, 자선에 관심이 있다 보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돕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해요. 최근엔 텔레비전을 같이 보다가 지구 온난화로 북극곰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걸 보더니 둘째 아이가 북극곰을 돕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더펠로우십 후원 캠페인에 홀로코스트 할머니들이 나오는데, 그땐 유럽 할머니들 얼른 도와줘야 한다고 하고요.
저금하는 재미가 나눔의 기쁨으로
Q. 가정 안에서 체다카를 실천하시는 건 어떠셨나요?
체다카가 사실 처음 들으면 단어가 생소해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저희 부부가 기존에 후원하고 있던 곳을 설명해주면서 ‘이거 유럽 할머니 도우려고 모으는 돈이야’라고 설명해주니 바로 이해하더라고요. 그리고 체다카함이 투명하니까, 아이들 눈에 돈이 쌓이는 게 재밌었나봐요. 돈만 보이면 다 넣으려고 해요.
Q. 체다카함에 모인 돈을 어떻게 실천하고 계신가요?
A. 아이들이 모은 돈, 그리고 저희 부부가 돈을 더 보태서 필리핀 선교사분들께 후원금을 보냈어요. 작년 말에 필리핀이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시거든요. 저희가 워낙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니까, 아이들도 흔쾌히 돕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나눔의 습관이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
Q. 마지막으로, 체다카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A. 저는 체다카는 곧 나눔의 습관이라고 생각해요. 습관이 된다는 건 사실 삶 속에 당연한 일로 자리 잡게 되는 거거든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 때에 일부러 곡식의 일부를 다른 이들을 위해 남겨두었다고 해요. 그럼 곡식이 필요한 굶주린 사람들은 죄책감 또는 부끄러움 없이 그 도움을 받고, 다시 추수 때가 되면 곡식을 남기고. 나눔이 이렇게 삶 속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는 게 진정한 체다카 아닐까 생각해요. 습관이 되려면 일단은 시작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셨다면, 체다카함을 잘 보이는 곳에 두시고 당장 시작해보시길 추천해 드려요.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에는 ‘의(義)’, 즉 정의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라는 뜻인 이 단어의 히브리어 번역은 ‘체다카(Tzedakah)’입니다. 자선의 의미를 알고 있는 ‘체다카’는 사실 하나님의 정의, 사람들을 향한 구제와 사랑이 함께 포함된 말이죠. 그렇다면 왜 성경적 자선, 체다카는 정의에서 나왔을까요? 성경은 절대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청지기’라 말하며, 우리의 소유는 삶 속에서 제한된 기간만 유지되는 것이라는 걸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유한 것을 바르게 사용한다’라는 의미는 정의를 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정의’를 뜻하는 체다카의 표현 속에 구제를 담아내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자선, 이웃과 내가 한 몸이라는 고백
성경에서는 돈을 벌고, 직업을 갖는 것도 이웃 사랑에 기반합니다. 직업의 동기는 바로 나의 이웃을 나의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즉 깊은 사랑에 따른 것이죠. 이 마음은 평생 우리의 숙제예요. 그런데 도대체 ‘네 몸과 같이,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에게도 이 부분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언젠가 유대인 청년을 만날 기회가 있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유대인들은 자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러자 청년이 대답합니다. “자선은 이웃과 내가 한 몸이라는 걸 고백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이웃의 아픔과 기쁨이 곧 나의 아픔과 기쁨이라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자선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고, 우리가 평생 배워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웃 사랑, 거룩한 삶의 제사
나아가 성경은 ‘이웃사랑’을 ‘거룩한 삶의 제사’로 말합니다. 로마서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라고 하셨을 때 구제와 긍휼과 같은 은사들이 포함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이웃사랑을 내가 여유가 되면 하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지금부터 내 삶 속에서 작더라도 온전하게 실천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가정 속에 이웃사랑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지혜가 충만하시기를, 그리고 그 복된 길을 자녀와 함께 가시기를 바랍니다.
* 최영우 대표 : 산업연구원과 한국해비타트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비영리단체 컨설팅 회사인 (주)도움과나눔 대표 이사로 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등 고전어 공부가 취미이고, 성경을 원전으로 연구하는 것에서 사업의 영감과 컨설팅의 핵심 아이디어를 얻는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국내 대학들과 세브란스 병원, 서울대학 병원, 국제앰네스티, 아름다운재단 등의 비영리 단체들을 컨설팅했고, CBS 세바시와 새롭게하소서, CGNTV나침반 등에 출연했다. 한국 교회의 새로운 돌파구는 헤브라이즘을 깊이 만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 IFCJ 컨설팅을 맡게 되었고, 가정의힘 창립 멤버가 되었다. 고려대와 동대학원에서 무역학과 국제경영을 공부했다.
이번 코로나19 상황을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긍정적인 면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족끼리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생에 가족이 이렇게 딱 붙어 있어본 적이 아마 없을 거예요. 강제로(?)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이때를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정을 원래 모습대로 세우는데 주력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혜향 교장(독수리학교)은 그 시작이 우리 가정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인정하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가정의 레벨이 어디에 있든지, 다른 가정과 비교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물론, 오랫동안 안 하던 일을 하려면 무척 힘들 거예요.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정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일하시기 시작하기 위해선 어떤 마음 가짐으로 임해야 할까요?
좋은 방법은 지금 우리 가정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파악하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가는 건데요. 이때 중요한 점은 다른 가정과 비교하지 않고, 우리 가정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옳은 방향이란, 하나님 말씀대로 돌아가는 거죠. 하나님이 맡겨주신 가정, 부모의 역할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한다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일하시기 시작하실 테니까요.
? 영상 보러 가기 ⇛ 팬데믹 시대 자녀 교육 시리즈 #1.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Q.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가정과 학교의 도전은?
지식전달은 이제 온라인이 다 완전히 차지할 거 같아요. 그러면은 영성하고 인성 두 개를 확보를 해야 되는데 집에서 엄마들이 충분히 준비되어 부모님들이 이걸 할 수 있는 가정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부분이 비는 건데… 그리고 애들이 부대끼면서 부족한 것도 그 다음에 잘하는 것도 드러나는데 그럴 기회가 없는 거잖아요. 온라인으로 하니까 그래서 이거를 어떻게 지금 해 나가는 게 크리스천들을 키우는 데 중요한 그런 거를 할 수 있을까, 그런게 이제 고민이어서 선생님들한테 과제를 드리려고 해요.
Q.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가정의 대응은?
앞으로 온라인 수업은 스타 강사들이 다 잡을 거 같아요. 그래서 온라인으로 지식만 쌓은 아이들 있잖아요. 그런 아이들이 대거 나올 거 같아요. 그러면 사회가 어떻게 될까. 그럼 크리스찬들은 그쪽(인성+영성)을 훨씬 더 단단하게 하지 않으면 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애들이 이거를 똑바로 보고 나가기가 쉽지 않겠다, 그러니까 부모님들도 이렇게 조그만 공동체라도 필요한 거예요. 서로 격려하고 독려하고 또 다시 훈련받고 이런게 (필요한 거죠).
Q. 코로나 시대, 학교의 대응은?
커리큘럼을 대거 바꿔야 될 거 같아요 저희(독수리학교)는 작년 재작년부터 수학은 일종의 온라인(형식)으로 선생님들이 다 올리고 그걸 보고 와서 (학생들이) 질문하는 형식으로 그렇게 수업을 했거든요 근데 온라인 수업을 잘 하면 지식적인 부분에서 훨씬 더 많이 캐치할 수 있어요 문제는 그거를 다룰 수 있는 기반. 가치관이나 영적인 어떤 베이스나 인성적인 훈련이나 이런 게 안 돼 있으면 ‘신인류’가 나오겠죠.
Q. 이런 시대 속에 엄마됨이란?
저는 셋째를 키우면서 비로소 엄마가 된 거 같았어요. 엄마됨을 누리면서 애가 울어도 뭐 애가 아프다고 해도 당황하지도 않고 이 얘를 어떻게 키우지 이런 것도 없어요 정말 복이죠. 아이들 기르는 거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인 거 같아요. 거룩한 일이에요. 제가 막 저희 며느리한테 거룩하다 야. 얘 아니었으면 그렇게 뭐 안 견디죠. 근데 얘 키우면서 나도 자라고. 그리고 내가 진짜 뭘 바라고 있는지도 보게 되고.
팬데믹 시대, 신앙교육의 절호의 기회
Q. 아이들이 가정예배 때 집중을 잘 안 하는데?
제가 유대인 정통파 가정에 가 가지고 안식일 지났잖아요. 이거는 예배가 아니에요. 그냥 평소 아이들하고 같이 지내는 생활이에요. 일어났다 앉았다 의자 위로 올라갔다 먹었다 뭐 온갖 짓을 다 해요 진짜 근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이제 자기네들 얘기해야 될 때는 물론 하고 우리가 생각하면서 우리가 (예배를 ) 이렇게 딱 갖추고 좀 해야 될 거 같은데 그냥 엄마 아버지하고 같이 하나님 말씀 우리가 듣고 그리고 기도하는게 그냥 생활이잖아요. 그냥 먹고 마시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수천 년을 그렇게 내려왔잖아요. 근데 우리가 이걸 삶으로 만들어내는 첫 번째 세대다 보니까 힘들죠.
Q. 온라인 예배 후 흐트러진 아이들 신앙, 어떻게 보완할지?
우리 학교는 10분 성경공부라는 게 있고요. 10분 성경공부는 부모님과 함께 하루에 10분만 이렇게해서 성경 한 구절 하고 가르치고 다음에 잠깐 기도해 주고 뭐 그런 거(예요). 어머님이 하시든지 아버님이 하시던지. 그리고 이거를 (한명씩) 따로 하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일대일로 일대일로. 그러니까 되게 품이 많이 들어 가는 거죠. 부모님들이 처음에 힘들어 하셨어요 그리고 잘 못 하시더라고요 매일(을)… 굉장히 힘들어 하셨는데 이거를 딱 이렇게 세팅을 한 가정은 굉장히 좋아요. 그 아이도 견고하고 어떤 일들이 닥쳤거나 자기가 어떤 사건을 만났을 때 성경적인 어떤 그런 해석들을 안내를 해 주면 받아들이는 그 속도나 흡수력이 굉장히 좋아요. 이걸 쭉 했던 아이들은.
근데 이제 그게 없고 집에서 별로 그런 거 없고 그냥 교회만 다니고 그랬던 아이들은 사고 체계 자체가 안 바뀌었기 때문에 어떤 사태가 났을 때 그거를 그냥 자기가 자기 생각대로 해석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거기서 빠져 나오기가, 그리고 정리 정돈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이게 자리가 잘 잡힌 가정들은 아이들이 뭐 사춘기고 그렇게 컸을 쓸 때도 상당히 점점 더 그 말씀에 의해서 얘기하는 그런 깊이있는 얘기들이 저절로 터져 나와요. 그래서 부모하고 자녀 관계가 - 우리가 지금 세대 차이라고 하잖아요- 그 부분이 굉장히 많이 해소가 되는 거죠. 두 제너레이션이 하나의 가치를 잡고 하나의 메시지를 받고 그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는 거 자체가 엄청 중요한 거 같아요.
Q.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게 뭔지? 교육의 본질적 목표?
우리의 파이널 골이 이 땅이 아니잖아요 이 땅은 이제 우리가 육체를 벗고 난 그 다음 세계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그럴까, 성화를 트레이닝하는 과정이라 그럴까, 하나님 신뢰하는 데서 더 자라나는 과정이라고 그럴까,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것들을 해 가는 그런 시간들이라고 할까. 사실은 이 땅이 저 영원한 세계에 종속되어 있는 건데 우리는 이 땅이 메인이고, 저기가 약간 종속된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아이들도 ‘ 너네들이 파이날로 바라보고 지금 가는 데는 저기야’ 저기를 향해서 가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뭐를 해야 될지 그리고 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 땅에 존재하면서 자기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줄을 앎으로서 하나님 사람으로 더 자라나가는(거야).
사실은 크리스찬 부모님들도 목표가 되게 땅에 있어요. 얘가 죽을 때까지 잘 살았으면 이 땅에서. 그 다음에는 천국 가겠지 예수 믿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건데 아예 우리의 그 틀을 바꾸지 않으면, 항상 초조하고 불안하고 내가 잘 하고 있나, 이렇게 가르쳐 가지고 얘가 이 땅에서 잘 매니지하고 살까? 제대로 할까, 못 하면 어떡하지? 그럼 도태되면? 뭐 이런데에 걸리는 거죠. 그래서 목표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되게 혼돈스럽고요 또 약해지고요 잘 넘어지고요, 쓸데없는 거 갖고 걱정 하고요.
결국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가 제일 엄마 아버지가 걱정이 돼서 이 대책을 좀 잘해주고 싶은 거 잖아요 뭐 크리스천으로서 기른다 기른다 말은 하지만 이 아이가 세상에서 잘 견디고 살 수 있는 애로 기르고 싶은 거죠. 그러니까 세상을 이기는 애로 키우기는 어렵죠. 그거를 엄마가 싸우고 이겨야 될 것 같아요.
Q. 엄마들이 자녀교육 걱정이 많은 이유?
잘하는 걸까. 이래도 될까? 요만큼만 하면 될까? 뭐 더 해야 되지 않을까? 뭐 그런 거. 근데 (하나님 안에서) 자유죠. 자유! 엄마도 자유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하나님 사랑하고 내가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고 내가 하나님 사랑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이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할 수 있기를 바라서 기도하고,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는데 잘 할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고 못 할 때도 있지만. 총체적으로 나는 하나님 사랑 하고 그리고 이 아이도 하나님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고 영원한 영생을 가장 기뻐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내가 이리도 하고 저리도 하는데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잘 하기도하고 못 하기도 하는데, 다 자유예요.
결국은 그런 우리의 양육의 손길을 하나님 받으셔서 이 아이를 이제 사실 실제로 하나님이 길러가시는 건데 우리는 우리 손에서 다 내가 잘하면 잘 자랄 거라고 생각하는거죠. (근데) 지금 되게 잘 안 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요? 어마어마하게 다 열심히 하잖아요? 그러고도 자기 아이가 잘 못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왜냐면 본인이 목표한대로 안 됐거든 얘가. 내 마음을 군더더기 없이 정리하는 거(가 중요해요!)
* 단혜향 교장은 기독대안학교인 독수리교육공동체의 설립자로, 지난 20년간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교사, 학생, 학부모들을 세우는 일에 분투해왔다. 독수리학교는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하나님 나라의 군사들을 길러낸다는 교육이념으로 1999년도에 분당에 설립하여, 현재 판교 캠퍼스(1,2)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 대안학교로 자리잡고, 믿음으로 훌륭한 기독인재들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제니퍼 시니어의 <부모로 산다는 것>은 우연히 저자의 TED 강의를 듣고 알게 된 책이다. 오늘날 자녀를 키우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풀어가는 강의가 무척 신선했다. 뉴욕 매거진의 베테랑 기자였던 저자는 ‘ All Joy and No Fun: 왜 부모는 육아를 싫어하는가’라는 커버스토리 특집 기사를 실어서 150만 뷰 이상의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고, 이에 수년간 추가적 조사와 연구를 통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부모들에게 (또한 가정과 부모됨의 의미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저자는 부모들의 솔직한 고충과 기쁨을 생애주기별로, 풍부한 현장 사례와 인터뷰를 통해 대변하면서, ‘부모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우리 앞에 차례로 펼쳐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의 더 큰 미덕은 부모됨의 의미를 묻는 것에서 더 나아가, 행복의 본질, 산다는 것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되묻는 데 있다. 우리 시대가 느끼는 부모됨의 고충과 역설을 충분히 공감하는 동시에, 우리 시대가 놓쳐버린 ‘오래된, 변함없는 가치’들을 제시하고 있기에, 책장을 덮고 나서도 진한 감동과 여운이 한동안 남는다. 결국 부모됨의 길은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길의 연장선에 있고, 아이들이란 존재는 우리가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또 그렇게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허락된 선물이라는 저자의 통찰이 깊이 와 닿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부모의 생애 주기에 따라 시간적 순서대로 각 장을 구성하고 있다. 먼저 1,2장은 육아 전쟁을 겪고 있는 젊은 부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육아 전쟁을 격하게 겪고 있는 젊은 부부들이 특히 공감할 수 있는 장이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난 부모들도 ‘ 아, 그래서 내가 그 때 그렇게 힘들었구나’ 돌아볼 수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육아를 대하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다. 젊은 부부들은 ‘누가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하느냐’를 두고 신경전을 벌일 때가 많다. 그런데 저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 스트레스를 더 많이 겪는 이유가 꼭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노동의 시간과 강도가 더 높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엄마가 육아에 더 집착하고, 더 세심하게 신경 쓰기 때문에, 대충 큰 것만 보는 아빠보다 스트레스가 더 많다는 것이다.
3장은 육아의 고충을 넘어, 육아의 기쁨을 살펴보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부모를 변화시키는지를 다룬다. 그리고 C.S 루이스의 <네가지 사랑>에 기초해서, 부모됨이 ‘선물로서의 사랑’을 실천하고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길임을 말한다. “ 우리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돌봄으로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된다 ”는 격언은 아이를 낳으면 모성이나 부성이 저절로 생기는 줄 알고 있는 우리 시대 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아이를 돌보는 힘든 시간을 통해 부모는 오래 참고, 자기의 유익을 바라지 않는 사랑이 무언지를 경험하고 배운다.
미국의 교육전쟁을 다루는 4장부터는 몰입도가 한층 높아진다. 최근 미국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교육 경쟁이 중산층을 중심으로 점점 가열되고 있다. 미국 중산층의 교육 경쟁 과열에 ‘타이거 맘’으로 대표되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끼친 영향을 서술하는 대목은 쓴웃음이 나기도 한다. 여기서 저자는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한다. ‘ 자기 아이를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해 줄 어떤 것들에 대한 여러 믿음들은 추측과 개인적 경험의 모호한 조합을 바탕으로 구축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저자가 어렸을 때 미국 중산층 부모들은 미래에 경쟁력을 갖추려면 일본어를 해야 한다 믿었다고 한다. 오늘날엔 그 믿음이 중국어로 바뀌었지만, 그런 믿음이 별로 신뢰할 만한 게 아니란 사실은 오늘날 일본어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오늘날 미국 엄마들의 역할이 ‘일정 조정자, 잔소리꾼’이 되어간다는 분석은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비슷하다. 다른 점은 미국 부모들은 공부보다 운동을 더 많이 시킨다는 점이다. 미국 부모들이 자녀들의 숙제를 봐주느라 저녁 식사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도 한국과 다르다. 한국은 학원이 그 모든 걸 블랙홀처럼 삼켜 버린다. 저자는 요즘 부모들이 이런 역할들을 떠맡는 이유가 ‘아이들의 행복’ 때문이지만, 정작 이전 세대 부모들은 아이들의 ‘행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저 먹여주고 입혀주고, 옳은 일을 하라고 가르치고 세상의 거센 파도에 준비시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에 대한 대가로 아이들은 가족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책임 있는 역할을 감당했다. “아이가 가족 내에서 보다 구체적인 역할을 가지고 있다면 부모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미친 듯이 날뛰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우리가 “ 자녀들이 어떻게 행동하길 바라는지 확신이 없고, 자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사춘기 아이들을 다루는 5장과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6장이다. 사춘기 아이들이 어떻게 부모를 배신하고, 격렬하게 부모와 싸우고,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치고, 부모를 무시하는지 보면, 왜 부모들이 SNS에 사춘기 자녀들 이야기를 올리지 않는지, 왜 사춘기 자녀를 둔 부부들이 더 많이 싸우는지 알 수 있다. 한 가지 역설은 자녀가 그토록 부모에게 등을 돌리는 시기에, 오히려 가장 많은 부분에서 부모의 자산과 지지와 도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저자는 사춘기 아이들의 충동적 행동들이 낯설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부모들에게 더 큰 공포를 준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무엇을 위해 남은 삶을 살아야 할지 재조정하게 만든다. 자녀들의 반항이 부모를 더욱 성숙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춘기 자녀들과 힘든 터널을 지나왔고 여전히 지나고 있는 한 어머니는 이렇게 고백한다. “ 너희들을 낳고 키웠다는 게 내가 지금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멋진 일이야. 그래서 나는 … (그녀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
이런 부모됨의 역설을 저자는 6장에서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기억하는 자아가 경험하는 자아보다 우리를 더 많이 지배하는 데, 기억하는 자아는 경험하는 자아보다 현실을 더 아름답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 키우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드냐고 불평하는 젊은 부모들의 ‘경험하는 자아’는, 얼마 후 아이의 어린시절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고 회상하는 ‘기억하는 자아’로 대치될 것이다. 결국,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도 계속 성장한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누군가의 필요를 돕는 인간됨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고, 무슨 일이 닥쳐도 해야 할 일의 목록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인생의 정점과 바닥을 거치며 삶의 복잡성과 풍성함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이다. C.S 루이스가 가장 고차원적 사랑으로 분류했던 ‘선물의 사랑’을,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배우고,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빛을 발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제니퍼 시니어는 자신을 비종교인(?)이라고 살짝 밝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독교적인 메시지와 가치가 곳곳에서 묻어남을 느낄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과 영향력이 여전히 곳곳에 울리고 있는 미국사회라 가능한 일인 듯하다.) 우리는 흔히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가 처음부터, 저절로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되어 있는 아이들이 부모 된 우리를 그런 존재가 되어가도록 초대하고, 도전하고, 성장시켜 준다는 점에서, 부모됨은 은혜이고 선물이다.
오늘날 크리스천 부모라고해서 육아전쟁, 교육전쟁,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 행복이란 목표를 향해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것 등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 가정의 부모라면, 저자가 오늘날 부모들이 놓치고 있다고 평가한, ‘변함없는 가치’에 깊이 헌신되어 할 것이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흔들리고 표류하는 세상의 부모와 달리,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확신해야 할 것이다. 그 목표는 자녀들의 행복, 성취, 안정,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오직 한 가지 책, 성경에 제시된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르는 것이다. 저자의 TED 강연도 “ 우리는 수많은 육아서들과 다 소화할 수도 없는 육아 정보들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저 한 권의 책만으로 충분한지 모릅니다. ” 라고 결론을 맺는다. 저자는 물론 그 책이 성경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크리스천 부모라면, ‘네, 성경만으로 충분합니다! ’ 라고 확신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나는 부모로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지 돌아본다. 끊임없이 내 약점과 한계를 비춰주고, 내 에너지를 고갈하게 만들고, 낙심과 기쁨 사이를 오가게 만드는 이 아이들을 통해, 부모인 내가 죽는 날까지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갈 것이라는 소망과 감사가 생긴다. 우리 아이들을 그리스도의 빛 된 다음 세대들로 기르는 일을 끝까지 감당하고 헌신하라는 격려도 받는다. 진정한 행복은 미친 듯이 나와 내 아이들의 행복을 신기루처럼 쫓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자녀에게 소중하고 의미 있고 변함없는 가치를 물려줄 수 있도록,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할 일상의 씨름들과 긴장을 놓지 않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끌어안는 과정 속에, 행복은 마치 파랑새처럼, 어느새 우리 가까이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간 이어질 예수향남교회의 순종의 과정 속에 이 덕과 지식이 교회와 각 가정 안에 풍성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갈 힘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라고 격려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작은 일 하나에 순종할 때 자신을 드러내시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계속 그 길을 간다.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길을 갈 수 있다. 단혜향 선생님의 ‘과정주의’가 얼마나 많은 가정과 자녀들에게 자유함을 주는지 우리가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지현 사무국장 (가정의 힘) Copy rights ⓒ Power of Family . All rights reserved.
야드 바솀(Yad Vashem)은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국립 기념관입니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가장 잘 기록되어 있는 곳으로,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전 세계에서 100여만 명이 방문하여 가슴 아픈 이 역사를 잊지 않고 우리가 지키고 나누어야 할 책임을 기억해왔습니다.
야드 바솀 풍경 (출처: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박물관 www.yadvashem.org)
그리고 야드 바솀에서 특별히 존경심을 담아 소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방의 의인들(The Righteous Among the Nations)’,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운 비유대인들입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이들은 적대감과 무관심이 팽배하던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박해받는 유대인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본인의 목숨을 걸고 도왔습니다.
출처: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박물관 www.yadvashem.org,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야드 바솀에서는 현재 51개국 27,700명의 비유대인들을 ‘열방의 의인들’로 소개하고 있으며,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한 1200명의 유대인을 구조한 오스카 쉰들러,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 사상가인 자크 엘륄, 폴란드의 간호사 이레나 센들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았던 이 열방의 의인의 이야기를 뉴스레터를 통해 앞으로 계속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더펠로우십은 계속해서 ‘열방의 의인들’ 시리즈를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열방의 의인들’* 시리즈는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 민족에 속하지 않으면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을 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의인은 수잔 스파크(Suzanne Spaak)입니다. 벨기에 브뤼셀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스파크는 결혼한 후 프랑스 파리에서 두 자녀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게 되면서 나치의 잔혹한 탄압과 인종적 차별을 목격하게 되었고,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스파크는 기존에 누리던 풍족한 삶 대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지하단체에 가담해서 나치에 대항하는 투쟁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어갔습니다. 특히 유대인 아이를 구출하는 데 힘썼는데, 수용소로 이송될 위기에 처한 163명의 아이들을 구출해서 안전한 집에 피신할 수 있도록 돕고, 식량과 의복을 제공하는 일을 지속했습니다.
1943년 10월, 수잔 스파크는 나치에 대항하는 활동을 펼쳤다는 이유로 나치 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다가 결국 처형되었습니다. 1944년 8월 12일,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가 해방되기 13일 전의 일이었습니다. 야드바솀은 수잔 스파크의 용기와 선행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1985년, ‘열방의의인’ 칭호를 수여 했습니다.
평범한 한 사람이었던 수잔 스파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사랑을 실천하는 용기가 있다고 말이죠. 당신의 사랑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전 세계 ‘열방의 의인들’ 이야기를 전해드리며,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열방의 의인들(The Righteous Among the Nations)’은 이스라엘에서 사용하고 있는 명예 칭호로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 기념관 ‘야드 바솀(Yad Vashem)’에서 이들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그 용기에 대해 교육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총 51개국 27,700명의 비유대인을 ‘열방의 의인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2009년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일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특정 분야에 하루 3시간씩 일주일에 20시간을 잡고 10년을 연습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이야기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 맞았다면 모든 가장은 가정 생활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현실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전혀 그렇지 않다. 일만 시간의 법칙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고, 노력을 통해 탁월해지기 위해서 아래에 소개할 두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점점 동의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40년간 이 분야를 연구한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캐럴 드웩의 책 [마인드셋(Mindset)]은 편견을 깬다. 그는 마인드 셋을 성장형, 고정형으로 분류한다. 성장형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은 삶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정형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은 변화가 재능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차이를 엄청난 통찰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긍정적 변화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만족할 때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타당한 이야기다.
1) 강력한 원리에 기초한 ‘잘 기획된 의도적 훈련’ 2) 나의 미래가 재능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성장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노력을 쉬지 않는 것
가정을 세우는 가슴 벅찬 길에 나선 우리에게도 이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성경에서는 한 달란트 받은 이들에 대한 엄한 질책이 소개된다. 이들은 하나님이 내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고 미리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가꾸는 노력을 게을리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고,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열심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가정의 변화를 도모하는 이들이다. 사실 내 변화에 애착을 가지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가정을 세우는 마인드 셋은 두 가지로 무장된다.
1) 잘 계획된 의도적 훈련(Well designed intentional discipline):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질서를 배우고 누림. 2) 성장형 마인드 셋: 하나님이 나와 우리 가정을 새롭게 만드시고 성장시키심을 믿음.
하나님은 그 사랑을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 넘칠 만큼 쏟아부으셨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살아라’고 명하시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그 명령이 사랑의 명령임을 자신의 자녀가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철저히 궤멸하셨다. 그리고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고 명하신다. 자신의 자녀들이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 사단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을 세우는 일은 ‘열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기반한 원리를 배우고 순종해야 한다. 사랑은 지식을 따라서 행할 때 힘을 발휘한다.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후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의 믿음에 덕(Virtue)을 더하라고 명했다. 덕은 후덕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덕은 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한다. 배워야 한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참 의미를 배우려는 아픈 노력을 해야 그 덕에 다가간다. 주님의 말씀이 명하시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내 삶에 적용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그 덕에 또 지식을 더하라고 하신다. 성경이 말하는 지식은 세상 학문이 줄 수 있는 지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내 가정에서 지키려고 애쓰고, 실망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살아있는 지식을 의미한다.
구약에서는 가정이라는 표현으로 ‘아비의 집(베이트 아브)’라는 보다 폭넓은 의미를 가진 말이 자주 쓰인다. 이 아비의 집에서는 3가지 기능이 일어났다.
1) 생산과 보호: 경제적인 생산과 의식주의 해결, 가족에 대한 돌봄과 보호 2) 예배와 배움: 하나님께 예배드림과 지식에 대한 태도 3) 이웃 돌봄: 어려운 이웃에 대한 돌봄의 원리와 실천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가정을 중심으로 공급되고 가르쳐진다. 가정은 숨을 곳이 없는 공동체다. 위선과 거짓이 숨을 공간이 없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구분이 무력해지는 곳이다. 지극히 영적인 것은 미소, 음식의 맛과 향, 집안의 온도로 드러나야 한다. 시시한 것들에 영혼이 담겨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이 몸을 입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배운 말씀의 원리들이 세상을 이기는 저력이 된다.
1년간 이어질 예수향남교회의 순종의 과정 속에 이 덕과 지식이 교회와 각 가정 안에 풍성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갈 힘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라고 격려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작은 일 하나에 순종할 때 자신을 드러내시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계속 그 길을 간다.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길을 갈 수 있다. 단혜향 선생님의 ‘과정주의’가 얼마나 많은 가정과 자녀들에게 자유함을 주는지 우리가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함을 강조하지만 각각 고유한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말해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는 데만 방점을 두고 남녀의 다름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녀의 차이를 알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저는 유교적인 가정에서 자라서 뼛속깊이 유교문화가 베여있는 사람인데, 저희 집사람은 신학을 공부해서 남녀가 동등하다고 믿는 진취적 여성입니다. 신혼 초에는 성경해석을 가지고도 밤을 세워가며 격렬하게 토론을 했습니다. 집사람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21)’는 말씀을 가지고 상호복종을 이야기하면, 저는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하라’는 벧전 3:6말씀을 들이대며 남편의 권위를 주장했습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요? 창세기 2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 ”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2:20)”
창조의 순서는 남자가 먼저이고,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서,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과 다르게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고 여자는 남자의 부속품이다, 이렇게 말하는 걸까요? 히브리 성경에는 전혀 그런 뉘앙스가 없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다 좋았는데, 사람이 혼자 있는 것만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가정(과 공동체)를 향해 품고 계신 하나님의 목적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남자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하나님이 어떤 창조행위를 하기 전에 마치 전략회의를 하는 듯한 모습이 묘사되는 점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 이하에서 인간을 만들 때 그러셨고, 다시 2장에서는 여성을 창조하실 때 그렇게 하십니다. 특별제작의도가 있으시다는 말입니다. 여성이(더 나아가 결혼이) 하나님의 창조에서 특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영어로 a helper suitable입니다. 꼭맞는 헬퍼란 뜻입니다. 헬퍼는 무슨 가사도우미 이런 뜻이 아닙니다. ‘돕는다‘라는 말의 히브리어가 에제르인데요, 이 말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17번 사용됩니다(3번은 군사적 원조). 예를 들어, 출애굽기 18:4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고 할 때 ‘도우사’가 바로 에제르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보다 더 약하고 열등한 존재라면 어떻게 이스라엘을 돕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여성이 남성을 돕는 것도 더 강한 존재이기에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으로 돕는 것처럼, 여성도 사랑의 힘으로 남자를 돕는 존재입니다.
(3) 또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의 부속품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갈빗대는 심장에 가장 가까운 뼈입니다. 즉, 여자는 남성과 나란히 있는 존재이고, 남성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성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에서 남자와 여자는 재료가 다르다고 그럽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어졌는데, 여자는 본(bone)으로 만들었으니까, 남자가 ‘질그릇’이라면 여자는 고급진 ‘본차이나’라고 농담을 합니다. 사실 아담도 여자를 보고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게 가장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다, 나의 코어중의 코어고, 에센스 중의 에센스다 이런 극찬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관점으로, 여성에게 굉장한 가치와 존엄성을 부여하는 말씀입니다.
▲ 남자는 질그릇 여자는 본차이나?
그러나 여성이 남성처럼 되어야 한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여성은 남성이 갖지 못한 다른 강인함을 가지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돕듯이 사랑으로 약자를 돕는 존재라는 독특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자기 부인을 소중하게 여기고, 부인의 의견을 늘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부족함을 돕도록 나에게 붙여주신 파트너라는 것을 알고 부인을 소중한 동역자로 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남성의 책임은 무엇일까요? 창세기 2장15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경작한다는 말은 땅을 일구고 일을 한다는 뜻인데, 여기는 섬긴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킨다는 말은 보호한다, 돌본다는 말인데, 원문의 정확한 뜻은 “탁월한 돌봄을 실행한다(exercise great care over)는 의미입니다. 아담에게 주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놀기만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모든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해서 동산을 지키고 돌보는 존재, 즉 열심히 일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면, 여자는요? 물론 여성도 남성과 함께 일합니다. 그러나 가정의 경제적 책임은 우선적으로 남성에게 먼저 주어졌습니다. 남성이 혼자 하면 외롭고 힘드니까 동역자로서 여성을 붙여주신 것입니다.
요즘은 맞벌이를 많이 하니까, 남자도 일하고 여자도 일하는데 다 똑같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일차적인 사명을 가장인 남자에게 먼저 주셨고, 남성은 그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부인도 벌고 나도 버니까, 여차해서 부인이 나보다 돈을 더 잘 벌면, 나는 부인 덕을 봐야겠다, 이러면 안됩니다. 직장생활이 너무 힘드니까, 능력있는 여자 만나 셔터맨 되는 걸 로망으로 여기는데, 설령 부인이 나보다 능력있고 수입이 높더라도, 남성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사명을 저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남성에게 주신 또 한 가지의 중요한 책임은 영적인 책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6)
선악과에 대한 금지 명령은 하나님과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을 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담은 이 언약을 가정의 대표로서 하나님과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성은 가정을 영적으로 지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족들에게 알려주고, 그 뜻을 온 가족이 함께 행하도록 하는 책임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남성들이 경제적인 책임은 지지만, 영적인 책임은 나 몰라라 하고 부인에게 떠넘깁니다. 그러나 원래 하나님의 뜻은 남자가 영적인 책임을 지고, 가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서구의 경건한 기독교 가정이나 유대인 가정을 보면, 아버지들이 식사 시간에 성경을 펴놓고 말씀을 가르치고 자녀들과 대화하는 것이 일상적입니다. 자녀들과 아내를 축복하는 기도도 아버지들이 합니다.
하나님은 나중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도, 선악과를 먼저 따먹은 하와를 부르시지 않고, 아담을 먼저 불러서 책임을 물으십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 (창3:9) 그러므로 남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 책임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 물으실 때, 집사람 핑계대지 말고 ‘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책임있게 대답하는 남성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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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해드릴 의인은 자크 엘륄(Jacques Ellul)입니다.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라는 그의 말은 사회운동가와 환경운동가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죠. 역사학, 사회학, 법학 등 다양한 연구 영역을 넘나든 사상가이자, 개신교 신자로서 신학을 공부하며 나치즘과 반유대주의에 반대한 최초의 프랑스 지식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대학교 강사 시절 이런 비판적 태도를 드러냈단 이유로 면직되기도 하였으나, 엘륄은 굴하지 않고 그의 아내와 함께 전쟁 포로들과 쫓기는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일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나치를 피해 도망 중이었던 이웃 유대인 가족, 헤르츠 가족을 살리기 위해 거짓 서류를 만들어 안전한 곳에 숨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습니다. 당시 비판의 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런 그의 행동은 위험을 무릅쓴 용기였습니다. 1994년, 엘륄이 세상을 떠난 후 이런 그의 선행이 알려지게 되었고, 2001년에 야드 바솀은 자크 엘륄에게 ‘열방의 의인’ 칭호를 수여 했습니다.
평범한 한 사람이었던 자크 엘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사랑을 실천하는 용기가 있다고 말이죠. 당신의 사랑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전 세계 ‘열방의 의인들’ 이야기를 전해드리며,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열방의 의인들(The Righteous Among the Nations)’은 이스라엘에서 사용하고 있는 명예 칭호로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 기념관 ‘야드 바솀(Yad Vashem)’에서 이들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그 용기에 대해 교육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총 51개국 27,700명의 비유대인을 ‘열방의 의인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체다카를 실천하고 있는 체다카 패밀리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오늘 만나볼 가족은 멤버십이 시작된 11월부터 한 달 넘게 일상 속에서 열심히 실천하고 계시는데요.
막내의 나눔 교육을 위해 시작했던 일이 가족 전체의 나눔 문화가 되었다고 해요. 앞으로 주변에 체다카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소리네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체다카함을 꾸미고, 돈을 모으는 즐거움
Q. 체다카를 가정 안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계시나요?
A. 저희 가정은 11월부터 체다카함을 비치해두고 일상의 작은 기부를 실천하고 있어요. 가정예배 때, 혹은 아이가 집안일을 돕거나 착한 일을 했을 때마다 수시로 작은 용돈을 주고 체다카함에 넣도록 하고 있죠.
7살 저희 막내는 체다카함을 꾸미고 만드는 일부터, 체다카함에 돈을 모으는 일, 모은 돈을 사용하는 일 모두 매우 적극적이고 너무나 즐거워해요. 집안에 돈만 보이면 체다카함에 넣으려고 하고, 친척들이나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도 체다카함에 얼른 넣고 싶어 한답니다.
저금하는 기쁨, 돈의 가치를 느끼는 귀중한 배움
Q. 기쁜 마음으로 기부를 실천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많은 걸 느끼셨을 것 같아요.
A. 네, 아이들에게는 적은 돈을 모아서 큰돈을 만드는 것도 흥미 있는 경험이고, 그 돈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는 법을 생각하고 훈련하는 것도 귀중한 배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첫 번째 달에 모은 돈을 누구에게 기부할지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보며 매우 행복해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동안 어려운 친구들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으면서 마음 아파했던 적이 많았는데, 이제 매달 조금씩이라도 그 친구들을 내 힘으로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이난거죠.
Q. 첫 번째 체다카는 어떻게 실천하셨나요?
A. 첫 번째 달에 돕고 싶었던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어요. 화장실도 없는 낡고 곰팡이 피는 지하에살고 있었죠. 그 친구에게 편지도 미리 쓰고, 아주 난리가 났었죠. 그런데 그 친구가 이미 수많은 다른 가정의 도움을 받아 깨끗한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그 돈은 아프신 할머니와 혼자 사는 다른 언니를 돕는 일에 첫 번째 달의 기부금을 보냈어요.
나눔을 실천하는 손녀의 모습에 할머니도 기부에 동참
Q. 일상 속에서 체다카를 실천하며 가정 안에 생긴 또 다른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A. 막내 아이가 작은 용돈을 모아서 기부하는 일을 신나게 하는 걸 보고 함께 살고 계신 아이의 할머니가 감동을 하셨어요. 체다카함에 기부하라고 종종 용돈을 주곤 하시더니, 이번 연말에는 본인께서도 선한 일에 기부하고 싶으시다며 꽤 큰 돈을 맡기셨어요.
매달 정부에서 복지수당으로 나오는 돈을 쓰지 않고 모아두셨었는데, 그 돈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고 싶다고 하신 거죠. 그 돈은 ‘국경 없는 의사회’와 ‘더펠로우십’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돕는 캠페인에 보냈어요.
작은 기부 습관이 세상을 바꾸기를 바라는 마음
Q. 마지막으로, 일상 속 나눔의 실천, 체다카에 대해 한마디 해주세요.
A. 성경에서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는데요. 그건 기부가 자신의 자랑이 되면 안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 가정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이유는, 자발적인 나눔과 그 나눔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기쁨이 되는지를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우리 가족의 작은 기부 습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 될까요. 그 놀라운 변화의 실천을 오늘부터 시작해보세요. 체다카 패밀리는 성경적 자선과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경적 일상문화 실천법, 함께 해요!
일상 속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체다카 패밀리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가족은 귀하고 소중한 1호 체다카 패밀리예요. 기존에 더펠로우십을 통해 정기후원을 하던 중 이 멤버십을 알게 되어 처음 시작하게 되셨다고 하는데요! 평소 가지고 있던 자선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자연스레 어린 두 자녀의 나눔 교육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해요. 나눔이 습관이 되는 날까지 체다카를 계속하고 싶다는 유빈·현빈이네 가족의 이야기를 체다카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부모에서 자녀에게, 자연스레 이어지는 나눔
Q. 평소 나눔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A. 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눔을 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남편도 저와 같은 생각이라 꾸준히 여러 비영리단체 정기 후원을 이어오고 있어요.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땐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었죠.
아무래도 지금 저희 부부가 비영리 단체 모금 영역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다 보니, 더욱 자선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기부, 나눔, 자선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요.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 아빠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야’라고 설명하기도 해요. 나눔은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저희 부부의 평소 생각이었는데, 체다카 패밀리 멤버십에 딱 그 말이 쓰여 있는 걸 보고 시작하게 되었죠.
Q.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닮는다고 하는데, 자녀에게 나눔 습관을 물려주고 계시네요.
A. 아무래도 저희가 평소에 후원을 여러 곳에 하기도 하고, 자선에 관심이 있다 보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돕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해요. 최근엔 텔레비전을 같이 보다가 지구 온난화로 북극곰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걸 보더니 둘째 아이가 북극곰을 돕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더펠로우십 후원 캠페인에 홀로코스트 할머니들이 나오는데, 그땐 유럽 할머니들 얼른 도와줘야 한다고 하고요.
저금하는 재미가 나눔의 기쁨으로
Q. 가정 안에서 체다카를 실천하시는 건 어떠셨나요?
체다카가 사실 처음 들으면 단어가 생소해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저희 부부가 기존에 후원하고 있던 곳을 설명해주면서 ‘이거 유럽 할머니 도우려고 모으는 돈이야’라고 설명해주니 바로 이해하더라고요. 그리고 체다카함이 투명하니까, 아이들 눈에 돈이 쌓이는 게 재밌었나봐요. 돈만 보이면 다 넣으려고 해요.
Q. 체다카함에 모인 돈을 어떻게 실천하고 계신가요?
A. 아이들이 모은 돈, 그리고 저희 부부가 돈을 더 보태서 필리핀 선교사분들께 후원금을 보냈어요. 작년 말에 필리핀이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시거든요. 저희가 워낙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니까, 아이들도 흔쾌히 돕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나눔의 습관이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
Q. 마지막으로, 체다카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A. 저는 체다카는 곧 나눔의 습관이라고 생각해요. 습관이 된다는 건 사실 삶 속에 당연한 일로 자리 잡게 되는 거거든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 때에 일부러 곡식의 일부를 다른 이들을 위해 남겨두었다고 해요. 그럼 곡식이 필요한 굶주린 사람들은 죄책감 또는 부끄러움 없이 그 도움을 받고, 다시 추수 때가 되면 곡식을 남기고. 나눔이 이렇게 삶 속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는 게 진정한 체다카 아닐까 생각해요. 습관이 되려면 일단은 시작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셨다면, 체다카함을 잘 보이는 곳에 두시고 당장 시작해보시길 추천해 드려요.
너의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에는 ‘의(義)’, 즉 정의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라는 뜻인 이 단어의 히브리어 번역은 ‘체다카(Tzedakah)’입니다. 자선의 의미를 알고 있는 ‘체다카’는 사실 하나님의 정의, 사람들을 향한 구제와 사랑이 함께 포함된 말이죠. 그렇다면 왜 성경적 자선, 체다카는 정의에서 나왔을까요?
성경은 절대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청지기’라 말하며, 우리의 소유는 삶 속에서 제한된 기간만 유지되는 것이라는 걸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유한 것을 바르게 사용한다’라는 의미는 정의를 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정의’를 뜻하는 체다카의 표현 속에 구제를 담아내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자선, 이웃과 내가 한 몸이라는 고백
성경에서는 돈을 벌고, 직업을 갖는 것도 이웃 사랑에 기반합니다. 직업의 동기는 바로 나의 이웃을 나의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즉 깊은 사랑에 따른 것이죠. 이 마음은 평생 우리의 숙제예요. 그런데 도대체 ‘네 몸과 같이,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에게도 이 부분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언젠가 유대인 청년을 만날 기회가 있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유대인들은 자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러자 청년이 대답합니다. “자선은 이웃과 내가 한 몸이라는 걸 고백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이웃의 아픔과 기쁨이 곧 나의 아픔과 기쁨이라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자선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고, 우리가
평생 배워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웃 사랑, 거룩한 삶의 제사
나아가 성경은 ‘이웃사랑’을 ‘거룩한 삶의 제사’로 말합니다. 로마서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라고 하셨을 때 구제와 긍휼과 같은 은사들이 포함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이웃사랑을 내가 여유가 되면 하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지금부터 내 삶 속에서 작더라도 온전하게 실천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가정 속에 이웃사랑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지혜가 충만하시기를, 그리고 그 복된 길을 자녀와 함께 가시기를 바랍니다.
* 최영우 대표 : 산업연구원과 한국해비타트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비영리단체 컨설팅 회사인 (주)도움과나눔 대표 이사로 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등 고전어 공부가 취미이고, 성경을 원전으로 연구하는 것에서 사업의 영감과 컨설팅의 핵심 아이디어를 얻는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국내 대학들과 세브란스 병원, 서울대학 병원, 국제앰네스티, 아름다운재단 등의 비영리 단체들을 컨설팅했고, CBS 세바시와 새롭게하소서, CGNTV나침반 등에 출연했다. 한국 교회의 새로운 돌파구는 헤브라이즘을 깊이 만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 IFCJ 컨설팅을 맡게 되었고, 가정의힘 창립 멤버가 되었다. 고려대와 동대학원에서 무역학과 국제경영을 공부했다.
코로나 사태와 가정의 사명
이번 코로나19 상황을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긍정적인 면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족끼리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생에 가족이 이렇게 딱 붙어 있어본 적이 아마 없을 거예요. 강제로(?)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이때를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정을 원래 모습대로 세우는데 주력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혜향 교장(독수리학교)은 그 시작이 우리 가정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인정하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가정의 레벨이 어디에 있든지, 다른 가정과 비교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물론, 오랫동안 안 하던 일을 하려면 무척 힘들 거예요.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정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일하시기 시작하기 위해선 어떤 마음 가짐으로 임해야 할까요?
좋은 방법은 지금 우리 가정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파악하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가는 건데요. 이때 중요한 점은 다른 가정과 비교하지 않고, 우리 가정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옳은 방향이란, 하나님 말씀대로 돌아가는 거죠. 하나님이 맡겨주신 가정, 부모의 역할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한다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일하시기 시작하실 테니까요.
? 영상 보러 가기 ⇛ 팬데믹 시대 자녀 교육 시리즈 #1.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Q.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가정과 학교의 도전은?
지식전달은 이제 온라인이 다 완전히 차지할 거 같아요. 그러면은 영성하고 인성 두 개를 확보를 해야 되는데 집에서 엄마들이 충분히 준비되어 부모님들이 이걸 할 수 있는 가정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부분이 비는 건데… 그리고 애들이 부대끼면서 부족한 것도 그 다음에 잘하는 것도 드러나는데 그럴 기회가 없는 거잖아요. 온라인으로 하니까 그래서 이거를 어떻게 지금 해 나가는 게 크리스천들을 키우는 데 중요한 그런 거를 할 수 있을까, 그런게 이제 고민이어서 선생님들한테 과제를 드리려고 해요.
Q.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가정의 대응은?
앞으로 온라인 수업은 스타 강사들이 다 잡을 거 같아요. 그래서 온라인으로 지식만 쌓은 아이들 있잖아요. 그런 아이들이 대거 나올 거 같아요. 그러면 사회가 어떻게 될까. 그럼 크리스찬들은 그쪽(인성+영성)을 훨씬 더 단단하게 하지 않으면 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애들이 이거를 똑바로 보고 나가기가 쉽지 않겠다, 그러니까 부모님들도 이렇게 조그만 공동체라도 필요한 거예요. 서로 격려하고 독려하고 또 다시 훈련받고 이런게 (필요한 거죠).
Q. 코로나 시대, 학교의 대응은?
커리큘럼을 대거 바꿔야 될 거 같아요 저희(독수리학교)는 작년 재작년부터 수학은 일종의 온라인(형식)으로 선생님들이 다 올리고 그걸 보고 와서 (학생들이) 질문하는 형식으로 그렇게 수업을 했거든요 근데 온라인 수업을 잘 하면 지식적인 부분에서 훨씬 더 많이 캐치할 수 있어요 문제는 그거를 다룰 수 있는 기반. 가치관이나 영적인 어떤 베이스나 인성적인 훈련이나 이런 게 안 돼 있으면 ‘신인류’가 나오겠죠.
Q. 이런 시대 속에 엄마됨이란?
저는 셋째를 키우면서 비로소 엄마가 된 거 같았어요. 엄마됨을 누리면서 애가 울어도 뭐 애가 아프다고 해도 당황하지도 않고 이 얘를 어떻게 키우지 이런 것도 없어요 정말 복이죠. 아이들 기르는 거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인 거 같아요. 거룩한 일이에요. 제가 막 저희 며느리한테 거룩하다 야. 얘 아니었으면 그렇게 뭐 안 견디죠. 근데 얘 키우면서 나도 자라고. 그리고 내가 진짜 뭘 바라고 있는지도 보게 되고.
팬데믹 시대, 신앙교육의 절호의 기회
Q. 아이들이 가정예배 때 집중을 잘 안 하는데?
제가 유대인 정통파 가정에 가 가지고 안식일 지났잖아요. 이거는 예배가 아니에요. 그냥 평소 아이들하고 같이 지내는 생활이에요. 일어났다 앉았다 의자 위로 올라갔다 먹었다 뭐 온갖 짓을 다 해요 진짜 근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이제 자기네들 얘기해야 될 때는 물론 하고 우리가 생각하면서 우리가 (예배를 ) 이렇게 딱 갖추고 좀 해야 될 거 같은데 그냥 엄마 아버지하고 같이 하나님 말씀 우리가 듣고 그리고 기도하는게 그냥 생활이잖아요. 그냥 먹고 마시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수천 년을 그렇게 내려왔잖아요. 근데 우리가 이걸 삶으로 만들어내는 첫 번째 세대다 보니까 힘들죠.
Q. 온라인 예배 후 흐트러진 아이들 신앙, 어떻게 보완할지?
우리 학교는 10분 성경공부라는 게 있고요. 10분 성경공부는 부모님과 함께 하루에 10분만 이렇게해서 성경 한 구절 하고 가르치고 다음에 잠깐 기도해 주고 뭐 그런 거(예요). 어머님이 하시든지 아버님이 하시던지. 그리고 이거를 (한명씩) 따로 하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일대일로 일대일로. 그러니까 되게 품이 많이 들어 가는 거죠. 부모님들이 처음에 힘들어 하셨어요 그리고 잘 못 하시더라고요 매일(을)… 굉장히 힘들어 하셨는데 이거를 딱 이렇게 세팅을 한 가정은 굉장히 좋아요. 그 아이도 견고하고 어떤 일들이 닥쳤거나 자기가 어떤 사건을 만났을 때 성경적인 어떤 그런 해석들을 안내를 해 주면 받아들이는 그 속도나 흡수력이 굉장히 좋아요. 이걸 쭉 했던 아이들은.
근데 이제 그게 없고 집에서 별로 그런 거 없고 그냥 교회만 다니고 그랬던 아이들은 사고 체계 자체가 안 바뀌었기 때문에 어떤 사태가 났을 때 그거를 그냥 자기가 자기 생각대로 해석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거기서 빠져 나오기가, 그리고 정리 정돈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이게 자리가 잘 잡힌 가정들은 아이들이 뭐 사춘기고 그렇게 컸을 쓸 때도 상당히 점점 더 그 말씀에 의해서 얘기하는 그런 깊이있는 얘기들이 저절로 터져 나와요. 그래서 부모하고 자녀 관계가 - 우리가 지금 세대 차이라고 하잖아요- 그 부분이 굉장히 많이 해소가 되는 거죠. 두 제너레이션이 하나의 가치를 잡고 하나의 메시지를 받고 그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는 거 자체가 엄청 중요한 거 같아요.
Q.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게 뭔지? 교육의 본질적 목표?
우리의 파이널 골이 이 땅이 아니잖아요 이 땅은 이제 우리가 육체를 벗고 난 그 다음 세계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그럴까, 성화를 트레이닝하는 과정이라 그럴까, 하나님 신뢰하는 데서 더 자라나는 과정이라고 그럴까,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것들을 해 가는 그런 시간들이라고 할까. 사실은 이 땅이 저 영원한 세계에 종속되어 있는 건데 우리는 이 땅이 메인이고, 저기가 약간 종속된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아이들도 ‘ 너네들이 파이날로 바라보고 지금 가는 데는 저기야’ 저기를 향해서 가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뭐를 해야 될지 그리고 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 땅에 존재하면서 자기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줄을 앎으로서 하나님 사람으로 더 자라나가는(거야).
사실은 크리스찬 부모님들도 목표가 되게 땅에 있어요. 얘가 죽을 때까지 잘 살았으면 이 땅에서. 그 다음에는 천국 가겠지 예수 믿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건데 아예 우리의 그 틀을 바꾸지 않으면, 항상 초조하고 불안하고 내가 잘 하고 있나, 이렇게 가르쳐 가지고 얘가 이 땅에서 잘 매니지하고 살까? 제대로 할까, 못 하면 어떡하지? 그럼 도태되면? 뭐 이런데에 걸리는 거죠. 그래서 목표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되게 혼돈스럽고요 또 약해지고요 잘 넘어지고요, 쓸데없는 거 갖고 걱정 하고요.
결국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가 제일 엄마 아버지가 걱정이 돼서 이 대책을 좀 잘해주고 싶은 거 잖아요 뭐 크리스천으로서 기른다 기른다 말은 하지만 이 아이가 세상에서 잘 견디고 살 수 있는 애로 기르고 싶은 거죠. 그러니까 세상을 이기는 애로 키우기는 어렵죠. 그거를 엄마가 싸우고 이겨야 될 것 같아요.
Q. 엄마들이 자녀교육 걱정이 많은 이유?
잘하는 걸까. 이래도 될까? 요만큼만 하면 될까? 뭐 더 해야 되지 않을까? 뭐 그런 거. 근데 (하나님 안에서) 자유죠. 자유! 엄마도 자유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하나님 사랑하고 내가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고 내가 하나님 사랑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이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할 수 있기를 바라서 기도하고,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는데 잘 할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고 못 할 때도 있지만. 총체적으로 나는 하나님 사랑 하고 그리고 이 아이도 하나님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고 영원한 영생을 가장 기뻐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내가 이리도 하고 저리도 하는데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잘 하기도하고 못 하기도 하는데, 다 자유예요.
결국은 그런 우리의 양육의 손길을 하나님 받으셔서 이 아이를 이제 사실 실제로 하나님이 길러가시는 건데 우리는 우리 손에서 다 내가 잘하면 잘 자랄 거라고 생각하는거죠. (근데) 지금 되게 잘 안 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요? 어마어마하게 다 열심히 하잖아요? 그러고도 자기 아이가 잘 못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왜냐면 본인이 목표한대로 안 됐거든 얘가. 내 마음을 군더더기 없이 정리하는 거(가 중요해요!)
* 단혜향 교장은 기독대안학교인 독수리교육공동체의 설립자로, 지난 20년간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교사, 학생, 학부모들을 세우는 일에 분투해왔다. 독수리학교는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하나님 나라의 군사들을 길러낸다는 교육이념으로 1999년도에 분당에 설립하여, 현재 판교 캠퍼스(1,2)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 대안학교로 자리잡고, 믿음으로 훌륭한 기독인재들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부모의 길, 인간의 길, 행복의 길을 묻다
제니퍼 시니어의 <부모로 산다는 것>은 우연히 저자의 TED 강의를 듣고 알게 된 책이다.
오늘날 자녀를 키우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풀어가는 강의가 무척 신선했다. 뉴욕 매거진의 베테랑 기자였던 저자는 ‘ All Joy and No Fun: 왜 부모는 육아를 싫어하는가’라는 커버스토리 특집 기사를 실어서 150만 뷰 이상의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고, 이에 수년간 추가적 조사와 연구를 통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부모들에게 (또한 가정과 부모됨의 의미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저자는 부모들의 솔직한 고충과 기쁨을 생애주기별로, 풍부한 현장 사례와 인터뷰를 통해 대변하면서, ‘부모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우리 앞에 차례로 펼쳐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의 더 큰 미덕은 부모됨의 의미를 묻는 것에서 더 나아가, 행복의 본질, 산다는 것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되묻는 데 있다. 우리 시대가 느끼는 부모됨의 고충과 역설을 충분히 공감하는 동시에, 우리 시대가 놓쳐버린 ‘오래된, 변함없는 가치’들을 제시하고 있기에, 책장을 덮고 나서도 진한 감동과 여운이 한동안 남는다. 결국 부모됨의 길은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길의 연장선에 있고, 아이들이란 존재는 우리가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또 그렇게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허락된 선물이라는 저자의 통찰이 깊이 와 닿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부모의 생애 주기에 따라 시간적 순서대로 각 장을 구성하고 있다.
먼저 1,2장은 육아 전쟁을 겪고 있는 젊은 부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육아 전쟁을 격하게 겪고 있는 젊은 부부들이 특히 공감할 수 있는 장이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난 부모들도 ‘ 아, 그래서 내가 그 때 그렇게 힘들었구나’ 돌아볼 수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육아를 대하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다. 젊은 부부들은 ‘누가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하느냐’를 두고 신경전을 벌일 때가 많다. 그런데 저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 스트레스를 더 많이 겪는 이유가 꼭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노동의 시간과 강도가 더 높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엄마가 육아에 더 집착하고, 더 세심하게 신경 쓰기 때문에, 대충 큰 것만 보는 아빠보다 스트레스가 더 많다는 것이다.
3장은 육아의 고충을 넘어, 육아의 기쁨을 살펴보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부모를 변화시키는지를 다룬다.
그리고 C.S 루이스의 <네가지 사랑>에 기초해서, 부모됨이 ‘선물로서의 사랑’을 실천하고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길임을 말한다. “ 우리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돌봄으로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된다 ”는 격언은 아이를 낳으면 모성이나 부성이 저절로 생기는 줄 알고 있는 우리 시대 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아이를 돌보는 힘든 시간을 통해 부모는 오래 참고, 자기의 유익을 바라지 않는 사랑이 무언지를 경험하고 배운다.
미국의 교육전쟁을 다루는 4장부터는 몰입도가 한층 높아진다. 최근 미국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교육 경쟁이 중산층을 중심으로 점점 가열되고 있다. 미국 중산층의 교육 경쟁 과열에 ‘타이거 맘’으로 대표되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끼친 영향을 서술하는 대목은 쓴웃음이 나기도 한다. 여기서 저자는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한다. ‘ 자기 아이를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해 줄 어떤 것들에 대한 여러 믿음들은 추측과 개인적 경험의 모호한 조합을 바탕으로 구축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저자가 어렸을 때 미국 중산층 부모들은 미래에 경쟁력을 갖추려면 일본어를 해야 한다 믿었다고 한다. 오늘날엔 그 믿음이 중국어로 바뀌었지만, 그런 믿음이 별로 신뢰할 만한 게 아니란 사실은 오늘날 일본어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오늘날 미국 엄마들의 역할이 ‘일정 조정자, 잔소리꾼’이 되어간다는 분석은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비슷하다. 다른 점은 미국 부모들은 공부보다 운동을 더 많이 시킨다는 점이다. 미국 부모들이 자녀들의 숙제를 봐주느라 저녁 식사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도 한국과 다르다. 한국은 학원이 그 모든 걸 블랙홀처럼 삼켜 버린다. 저자는 요즘 부모들이 이런 역할들을 떠맡는 이유가 ‘아이들의 행복’ 때문이지만, 정작 이전 세대 부모들은 아이들의 ‘행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저 먹여주고 입혀주고, 옳은 일을 하라고 가르치고 세상의 거센 파도에 준비시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에 대한 대가로 아이들은 가족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책임 있는 역할을 감당했다. “아이가 가족 내에서 보다 구체적인 역할을 가지고 있다면 부모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미친 듯이 날뛰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우리가 “ 자녀들이 어떻게 행동하길 바라는지 확신이 없고, 자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사춘기 아이들을 다루는 5장과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6장이다. 사춘기 아이들이 어떻게 부모를 배신하고, 격렬하게 부모와 싸우고,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치고, 부모를 무시하는지 보면, 왜 부모들이 SNS에 사춘기 자녀들 이야기를 올리지 않는지, 왜 사춘기 자녀를 둔 부부들이 더 많이 싸우는지 알 수 있다. 한 가지 역설은 자녀가 그토록 부모에게 등을 돌리는 시기에, 오히려 가장 많은 부분에서 부모의 자산과 지지와 도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저자는 사춘기 아이들의 충동적 행동들이 낯설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부모들에게 더 큰 공포를 준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무엇을 위해 남은 삶을 살아야 할지 재조정하게 만든다. 자녀들의 반항이 부모를 더욱 성숙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춘기 자녀들과 힘든 터널을 지나왔고 여전히 지나고 있는 한 어머니는 이렇게 고백한다. “ 너희들을 낳고 키웠다는 게 내가 지금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멋진 일이야. 그래서 나는 … (그녀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
이런 부모됨의 역설을 저자는 6장에서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기억하는 자아가 경험하는 자아보다 우리를 더 많이 지배하는 데, 기억하는 자아는 경험하는 자아보다 현실을 더 아름답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 키우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드냐고 불평하는 젊은 부모들의 ‘경험하는 자아’는, 얼마 후 아이의 어린시절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고 회상하는 ‘기억하는 자아’로 대치될 것이다. 결국,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도 계속 성장한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누군가의 필요를 돕는 인간됨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고, 무슨 일이 닥쳐도 해야 할 일의 목록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인생의 정점과 바닥을 거치며 삶의 복잡성과 풍성함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이다. C.S 루이스가 가장 고차원적 사랑으로 분류했던 ‘선물의 사랑’을,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배우고,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빛을 발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제니퍼 시니어는 자신을 비종교인(?)이라고 살짝 밝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독교적인 메시지와 가치가 곳곳에서 묻어남을 느낄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과 영향력이 여전히 곳곳에 울리고 있는 미국사회라 가능한 일인 듯하다.) 우리는 흔히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가 처음부터, 저절로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되어 있는 아이들이 부모 된 우리를 그런 존재가 되어가도록 초대하고, 도전하고, 성장시켜 준다는 점에서, 부모됨은 은혜이고 선물이다.
오늘날 크리스천 부모라고해서 육아전쟁, 교육전쟁,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 행복이란 목표를 향해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것 등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 가정의 부모라면, 저자가 오늘날 부모들이 놓치고 있다고 평가한, ‘변함없는 가치’에 깊이 헌신되어 할 것이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흔들리고 표류하는 세상의 부모와 달리,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확신해야 할 것이다. 그 목표는 자녀들의 행복, 성취, 안정,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오직 한 가지 책, 성경에 제시된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르는 것이다. 저자의 TED 강연도 “ 우리는 수많은 육아서들과 다 소화할 수도 없는 육아 정보들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저 한 권의 책만으로 충분한지 모릅니다. ” 라고 결론을 맺는다. 저자는 물론 그 책이 성경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크리스천 부모라면, ‘네, 성경만으로 충분합니다! ’ 라고 확신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나는 부모로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지 돌아본다. 끊임없이 내 약점과 한계를 비춰주고, 내 에너지를 고갈하게 만들고, 낙심과 기쁨 사이를 오가게 만드는 이 아이들을 통해, 부모인 내가 죽는 날까지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갈 것이라는 소망과 감사가 생긴다. 우리 아이들을 그리스도의 빛 된 다음 세대들로 기르는 일을 끝까지 감당하고 헌신하라는 격려도 받는다. 진정한 행복은 미친 듯이 나와 내 아이들의 행복을 신기루처럼 쫓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자녀에게 소중하고 의미 있고 변함없는 가치를 물려줄 수 있도록,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할 일상의 씨름들과 긴장을 놓지 않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끌어안는 과정 속에, 행복은 마치 파랑새처럼, 어느새 우리 가까이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간 이어질 예수향남교회의 순종의 과정 속에 이 덕과 지식이 교회와 각 가정 안에 풍성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갈 힘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라고 격려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작은 일 하나에 순종할 때 자신을 드러내시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계속 그 길을 간다.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길을 갈 수 있다. 단혜향 선생님의 ‘과정주의’가 얼마나 많은 가정과 자녀들에게 자유함을 주는지 우리가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지현 사무국장 (가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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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드 바솀(Yad Vashem)은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국립 기념관입니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가장 잘 기록되어 있는 곳으로,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전 세계에서 100여만 명이 방문하여 가슴 아픈 이 역사를 잊지 않고 우리가 지키고 나누어야 할 책임을 기억해왔습니다.
야드 바솀 풍경 (출처: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박물관 www.yadvashem.org)그리고 야드 바솀에서 특별히 존경심을 담아 소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방의 의인들(The Righteous Among the Nations)’,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운 비유대인들입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이들은 적대감과 무관심이 팽배하던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박해받는 유대인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본인의 목숨을 걸고 도왔습니다.
출처: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박물관 www.yadvashem.org,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야드 바솀에서는 현재 51개국 27,700명의 비유대인들을 ‘열방의 의인들’로 소개하고 있으며,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한 1200명의 유대인을 구조한 오스카 쉰들러,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 사상가인 자크 엘륄, 폴란드의 간호사 이레나 센들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았던 이 열방의 의인의 이야기를 뉴스레터를 통해 앞으로 계속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더펠로우십은 계속해서 ‘열방의 의인들’ 시리즈를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열방의 의인들’* 시리즈는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 민족에 속하지 않으면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을 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의인은 수잔 스파크(Suzanne Spaak)입니다.
벨기에 브뤼셀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스파크는 결혼한 후 프랑스 파리에서 두 자녀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게 되면서 나치의 잔혹한 탄압과 인종적 차별을 목격하게 되었고,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Wikipedia
스파크는 기존에 누리던 풍족한 삶 대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지하단체에 가담해서 나치에 대항하는 투쟁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어갔습니다.
특히 유대인 아이를 구출하는 데 힘썼는데, 수용소로 이송될 위기에 처한 163명의 아이들을 구출해서 안전한 집에 피신할 수 있도록 돕고,
식량과 의복을 제공하는 일을 지속했습니다.
©stewross.com
1943년 10월, 수잔 스파크는 나치에 대항하는 활동을 펼쳤다는 이유로 나치 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다가 결국 처형되었습니다.
1944년 8월 12일,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가 해방되기 13일 전의 일이었습니다. 야드바솀은 수잔 스파크의 용기와 선행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1985년,
‘열방의의인’ 칭호를 수여 했습니다.
평범한 한 사람이었던 수잔 스파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사랑을 실천하는 용기가 있다고 말이죠.
당신의 사랑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전 세계 ‘열방의 의인들’ 이야기를 전해드리며,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열방의 의인들(The Righteous Among the Nations)’은 이스라엘에서 사용하고 있는 명예 칭호로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 기념관 ‘야드 바솀(Yad Vashem)’에서 이들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그 용기에 대해 교육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총 51개국 27,700명의 비유대인을 ‘열방의 의인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정을 세우는 마인드 셋
(주)도움과나눔 최영우 대표
2009년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일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특정 분야에 하루 3시간씩 일주일에 20시간을 잡고 10년을 연습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이야기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 맞았다면 모든 가장은 가정 생활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현실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전혀 그렇지 않다. 일만 시간의 법칙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고, 노력을 통해 탁월해지기 위해서 아래에 소개할 두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점점 동의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40년간 이 분야를 연구한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캐럴 드웩의 책 [마인드셋(Mindset)]은 편견을 깬다. 그는 마인드 셋을 성장형, 고정형으로 분류한다. 성장형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은 삶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정형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은 변화가 재능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차이를 엄청난 통찰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긍정적 변화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만족할 때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타당한 이야기다.
1) 강력한 원리에 기초한 ‘잘 기획된 의도적 훈련’
2) 나의 미래가 재능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성장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노력을 쉬지 않는 것
가정을 세우는 가슴 벅찬 길에 나선 우리에게도 이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성경에서는 한 달란트 받은 이들에 대한 엄한 질책이 소개된다.
이들은 하나님이 내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고 미리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가꾸는 노력을 게을리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고,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열심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가정의 변화를 도모하는 이들이다. 사실 내 변화에 애착을 가지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가정을 세우는 마인드 셋은 두 가지로 무장된다.
1) 잘 계획된 의도적 훈련(Well designed intentional discipline):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질서를 배우고 누림.
2) 성장형 마인드 셋: 하나님이 나와 우리 가정을 새롭게 만드시고 성장시키심을 믿음.
하나님은 그 사랑을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 넘칠 만큼 쏟아부으셨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살아라’고 명하시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그 명령이 사랑의 명령임을 자신의 자녀가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철저히 궤멸하셨다. 그리고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고 명하신다.
자신의 자녀들이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 사단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을 세우는 일은 ‘열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기반한 원리를 배우고 순종해야 한다. 사랑은 지식을 따라서 행할 때 힘을 발휘한다.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후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의 믿음에 덕(Virtue)을 더하라고 명했다. 덕은 후덕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덕은 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한다. 배워야 한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참 의미를 배우려는 아픈 노력을 해야 그 덕에 다가간다. 주님의 말씀이 명하시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내 삶에 적용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그 덕에 또 지식을 더하라고 하신다. 성경이 말하는 지식은 세상 학문이 줄 수 있는 지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내 가정에서 지키려고 애쓰고, 실망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살아있는 지식을 의미한다.
구약에서는 가정이라는 표현으로 ‘아비의 집(베이트 아브)’라는 보다 폭넓은 의미를 가진 말이 자주 쓰인다. 이 아비의 집에서는 3가지 기능이 일어났다.
1) 생산과 보호: 경제적인 생산과 의식주의 해결, 가족에 대한 돌봄과 보호
2) 예배와 배움: 하나님께 예배드림과 지식에 대한 태도
3) 이웃 돌봄: 어려운 이웃에 대한 돌봄의 원리와 실천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가정을 중심으로 공급되고 가르쳐진다. 가정은 숨을 곳이 없는 공동체다. 위선과 거짓이 숨을 공간이 없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구분이 무력해지는 곳이다. 지극히 영적인 것은 미소, 음식의 맛과 향, 집안의 온도로 드러나야 한다. 시시한 것들에 영혼이 담겨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이 몸을 입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배운 말씀의 원리들이 세상을 이기는 저력이 된다.
1년간 이어질 예수향남교회의 순종의 과정 속에 이 덕과 지식이 교회와 각 가정 안에 풍성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갈 힘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라고 격려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작은 일 하나에 순종할 때 자신을 드러내시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계속 그 길을 간다.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길을 갈 수 있다. 단혜향 선생님의 ‘과정주의’가 얼마나 많은 가정과 자녀들에게 자유함을 주는지 우리가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함을 강조하지만 각각 고유한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말해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는 데만 방점을 두고 남녀의 다름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녀의 차이를 알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저는 유교적인 가정에서 자라서 뼛속깊이 유교문화가 베여있는 사람인데, 저희 집사람은 신학을 공부해서 남녀가 동등하다고 믿는 진취적 여성입니다. 신혼 초에는 성경해석을 가지고도 밤을 세워가며 격렬하게 토론을 했습니다. 집사람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21)’는 말씀을 가지고 상호복종을 이야기하면, 저는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하라’는 벧전 3:6말씀을 들이대며 남편의 권위를 주장했습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요? 창세기 2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 ”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2:20)”
창조의 순서는 남자가 먼저이고,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서,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과 다르게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고 여자는 남자의 부속품이다, 이렇게 말하는 걸까요? 히브리 성경에는 전혀 그런 뉘앙스가 없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다 좋았는데, 사람이 혼자 있는 것만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가정(과 공동체)를 향해 품고 계신 하나님의 목적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남자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하나님이 어떤 창조행위를 하기 전에 마치 전략회의를 하는 듯한 모습이 묘사되는 점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 이하에서 인간을 만들 때 그러셨고, 다시 2장에서는 여성을 창조하실 때 그렇게 하십니다. 특별제작의도가 있으시다는 말입니다. 여성이(더 나아가 결혼이) 하나님의 창조에서 특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영어로 a helper suitable입니다. 꼭맞는 헬퍼란 뜻입니다. 헬퍼는 무슨 가사도우미 이런 뜻이 아닙니다. ‘돕는다‘라는 말의 히브리어가 에제르인데요, 이 말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17번 사용됩니다(3번은 군사적 원조). 예를 들어, 출애굽기 18:4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고 할 때 ‘도우사’가 바로 에제르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보다 더 약하고 열등한 존재라면 어떻게 이스라엘을 돕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여성이 남성을 돕는 것도 더 강한 존재이기에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으로 돕는 것처럼, 여성도 사랑의 힘으로 남자를 돕는 존재입니다.
(3) 또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의 부속품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갈빗대는 심장에 가장 가까운 뼈입니다. 즉, 여자는 남성과 나란히 있는 존재이고, 남성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성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에서 남자와 여자는 재료가 다르다고 그럽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어졌는데, 여자는 본(bone)으로 만들었으니까, 남자가 ‘질그릇’이라면 여자는 고급진 ‘본차이나’라고 농담을 합니다. 사실 아담도 여자를 보고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게 가장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다, 나의 코어중의 코어고, 에센스 중의 에센스다 이런 극찬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관점으로, 여성에게 굉장한 가치와 존엄성을 부여하는 말씀입니다.
▲ 남자는 질그릇 여자는 본차이나?
그러나 여성이 남성처럼 되어야 한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여성은 남성이 갖지 못한 다른 강인함을 가지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돕듯이 사랑으로 약자를 돕는 존재라는 독특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자기 부인을 소중하게 여기고, 부인의 의견을 늘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부족함을 돕도록 나에게 붙여주신 파트너라는 것을 알고 부인을 소중한 동역자로 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남성의 책임은 무엇일까요? 창세기 2장15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경작한다는 말은 땅을 일구고 일을 한다는 뜻인데, 여기는 섬긴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킨다는 말은 보호한다, 돌본다는 말인데, 원문의 정확한 뜻은 “탁월한 돌봄을 실행한다(exercise great care over)는 의미입니다. 아담에게 주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놀기만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모든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해서 동산을 지키고 돌보는 존재, 즉 열심히 일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면, 여자는요? 물론 여성도 남성과 함께 일합니다. 그러나 가정의 경제적 책임은 우선적으로 남성에게 먼저 주어졌습니다. 남성이 혼자 하면 외롭고 힘드니까 동역자로서 여성을 붙여주신 것입니다.
요즘은 맞벌이를 많이 하니까, 남자도 일하고 여자도 일하는데 다 똑같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일차적인 사명을 가장인 남자에게 먼저 주셨고, 남성은 그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부인도 벌고 나도 버니까, 여차해서 부인이 나보다 돈을 더 잘 벌면, 나는 부인 덕을 봐야겠다, 이러면 안됩니다. 직장생활이 너무 힘드니까, 능력있는 여자 만나 셔터맨 되는 걸 로망으로 여기는데, 설령 부인이 나보다 능력있고 수입이 높더라도, 남성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사명을 저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남성에게 주신 또 한 가지의 중요한 책임은 영적인 책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6)
선악과에 대한 금지 명령은 하나님과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을 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담은 이 언약을 가정의 대표로서 하나님과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성은 가정을 영적으로 지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족들에게 알려주고, 그 뜻을 온 가족이 함께 행하도록 하는 책임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남성들이 경제적인 책임은 지지만, 영적인 책임은 나 몰라라 하고 부인에게 떠넘깁니다. 그러나 원래 하나님의 뜻은 남자가 영적인 책임을 지고, 가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서구의 경건한 기독교 가정이나 유대인 가정을 보면, 아버지들이 식사 시간에 성경을 펴놓고 말씀을 가르치고 자녀들과 대화하는 것이 일상적입니다. 자녀들과 아내를 축복하는 기도도 아버지들이 합니다.
하나님은 나중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도, 선악과를 먼저 따먹은 하와를 부르시지 않고, 아담을 먼저 불러서 책임을 물으십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 (창3:9) 그러므로 남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 책임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 물으실 때, 집사람 핑계대지 말고 ‘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책임있게 대답하는 남성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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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펠로우십은 계속해서 ‘열방의 의인들’ 시리즈를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열방의 의인들’* 시리즈는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 민족에 속하지 않으면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을 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Wikipedia
이번에 소개해드릴 의인은 자크 엘륄(Jacques Ellul)입니다.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라는 그의 말은 사회운동가와 환경운동가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죠. 역사학, 사회학, 법학 등 다양한 연구 영역을 넘나든 사상가이자, 개신교 신자로서 신학을 공부하며 나치즘과 반유대주의에 반대한 최초의 프랑스 지식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대학교 강사 시절 이런 비판적 태도를 드러냈단 이유로 면직되기도 하였으나, 엘륄은 굴하지 않고 그의 아내와 함께 전쟁 포로들과 쫓기는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일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나치를 피해 도망 중이었던 이웃 유대인 가족, 헤르츠 가족을 살리기 위해 거짓 서류를 만들어 안전한 곳에 숨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습니다. 당시 비판의 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런 그의 행동은 위험을 무릅쓴 용기였습니다. 1994년, 엘륄이 세상을 떠난 후 이런 그의 선행이 알려지게 되었고, 2001년에 야드 바솀은 자크 엘륄에게 ‘열방의 의인’ 칭호를 수여 했습니다.
©Wikipedia
평범한 한 사람이었던 자크 엘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사랑을 실천하는 용기가 있다고 말이죠.
당신의 사랑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전 세계 ‘열방의 의인들’ 이야기를 전해드리며,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열방의 의인들(The Righteous Among the Nations)’은 이스라엘에서 사용하고 있는 명예 칭호로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 기념관 ‘야드 바솀(Yad Vashem)’에서 이들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그 용기에 대해 교육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총 51개국 27,700명의 비유대인을 ‘열방의 의인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