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한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갑니다. 여전히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고통 속에 놓여있고, 과거의 평화로운 일상 또한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피해 가장 소중한 물건 몇 가지만 겨우 챙겨 도망쳐온 사람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남은 사람들 모두 폭격과 화재로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식량, 생필품, 의료 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더펠로우십은 30년간 구호 활동을 펼쳐온 동구권의 대표 사업지 우크라이나 지역의 회복을 위해 음식, 생활용품, 의약품 등 매주 30톤에 달하는 구호 물품을 비행기로 전달하여 난민 대피소로 피신한 난민들의 안전과 이주를 돕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몰도바 국경까지 대피를 위한 버스 운행, 식량 및 기본 생필품, 그리고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 있는 항공편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몰도바 영공이 완전히 폐쇄되어 비행기 운항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대규모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더펠로우십의 비행기를 통해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이스라엘로 이송할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 발발 후 지금까지, 지토미르 지역 91명의 고아원 아이들 탈출을 비롯하여 더펠로우십의 항공기를 20회 이상 운항하며 총 2,659명(2022.04.07 기준)이 이스라엘로 올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난민을 이스라엘로 이송하는 ’알리야’ 사업은 현재 법적 절차, 이송 및 정착 지원을 비롯한 전 과정을 이스라엘 외무부, 이민 통합부와 함께 진행하고 있으며, 전쟁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이스라엘로 입국하길 원하는 인원이 증가함에 따라 이송 규모를 확대하고 입국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고자 이스라엘 당국과 조율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입국을 요청한 난민들은 더펠로우십이 운영하는 항공편을 통해 이스라엘로 이송되며,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초기 주거비, 식량, 의류 등 기초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앞으로도 국경에서의 대피소 지원과 더불어 이스라엘행 비행기 운항을 통해 더 많은 난민들을 이송할 계획입니다.
“일어날 줄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들이닥치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다행히 더펠로우십의 도움 덕분에 이스라엘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여러 복잡한 과정들도 모두 순조롭게 준비할 수 있었어요. 우크라이나를 떠나 이제 이스라엘에서 펼쳐질 새로운 삶이 기대도 되고, 사실 걱정도 돼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과 함께 안전한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이에요. 너무 기쁘고 감사해요.”
- 빅토리아 마르코프스키 (37세)
후원자님 덕분에 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 놓인 이들의 삶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더펠로우십은 도움의 손길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마리아(86세) 할머니가 태어난 곳은 벨라루스의 한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다섯 살, 어린 소녀의 삶은 전쟁과학살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직장에서 돌아와 얼른 대피할 준비를 하라고 말하셨어요. 어머니가 따뜻한 옷도 몇개 챙기려고 하니까, 아버지는 일주일 안에 돌아올 테니까 짐을 조금만 챙기라고 하셨죠. 아마 당시엔 모두가 잠깐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고 저도 그랬으니까요.”
계속되는 폭격, 눈 앞에 펼쳐진 끝없는 죽음 그리고 세 살 어린 동생이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세상을 떠나고 차가운 땅에 묻어야 했던 큰 고통의 기억은 평생 할머니를 괴롭혔습니다.
“아직도 가끔 나치가 나를 잡으려고 하는 악몽을 꿔요. 요즘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더 심해졌어요. 내가 겪었던 슬픔이 반복될 줄은 몰랐어요. 그때 겪었던 고통들이 다시 떠올라요.”
전쟁은 끝났지만, 마리아 할머니 가족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린 삶의 터전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마리아 할머니는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해 노력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서, 그리고 조산사로 일하며 가족들을 부양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땐, 할머니가 겪었던 고통을 기억하며 그곳에 남아 사람들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삶은 외롭고 무서울 때도 있지만 더펠로우십은 홀로 명절을 보낼 때마다 외로움을 느끼는 마리아 할머니에게 좋은 친구입니다.
“더펠로우십 덕분에 집도, 음식도, 친구도 생겨서 편안해요. 이젠 한국에 사는 친구들도 생겼네요. 한국에서 응원해주는 후원자님들께 감사해요"
외로움과 배고픔 속에 홀로 남겨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하루에 큰 행복과 기쁨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펠로우십 IFCJ는 외로움과 빈곤 속에 평생을 살아온 동구권 5만, 이스라엘 16만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식량, 난방, 의료서비스 및
지난 2월에서 3월, 약 한 달 동안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 기념 캠페인을 진행했었는데요.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따스한 마음과 응원 메시지를 작성해 주셨어요. 그리고 이번 4월, 더펠로우십 푸드박스와 함께 한국에서 보낸 메시지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께 전달되었습니다. 홀로코스트로 가족들을 잃고 홀로 외로운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생존자들에게 응원과 관심은 하루를 기쁘게 보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오랜만에 받아 본 편지라면서, 반가운 마음에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또 읽어 보시는 마음에 현지 직원의 마음도 따뜻해졌다고 해요.
“혼자 있을 땐 라디오를 켜 놓곤 해요. 누가 옆에 있는 것 같아 덜 외롭거든요.
더펠로우십이 찾아오는 날이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는 날이에요.
오늘은 특별하게 한국에서 온 편지도 있어서 기뻐요!”
이리나 할머니는 1941년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 전쟁 중에 태어나 어린 시절 내내 전쟁과 가난, 배고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가족들은 모두 우크라이나로 이주했고 이전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혼 생활 속에서 극심한 반유대주의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모든 고통을 떠나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순탄하지 않은 삶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이곳에서 안전하게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낼 수 있으니 감사할 뿐이에요. 지금 우크라이나가 전쟁 속에 있어서 마음이 아파요. 제가 살던 곳, 리비우도 참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더펠로우십이 30년 동안 동구권 구호 사업을 지속하며 가장 많은 빈곤 가정 지원 활동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쿠즈멘코 가족은 2019년 우크라이나 지역 지원 대상 가정으로 만나 수 년 동안 더펠로우십의 기초 생활 지원, 심리 및 자립 상담을 통해 안정적인 가정으로 자립할 수 있었던 가족입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피해 떠나온 쿠즈멘코 가족을 몰도바 공항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가족들은 이스라엘로 향하는 더펠로우십의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22.3.6 몰도바 공항에서 쿠즈멘코 가족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너무 무서웠어요.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계속 들리고, 몇몇곳은 폭격을 받아 무너졌어요. 며칠 동안은 아이들과 지하에 숨어 지내야 했어요. 더펠로우십 덕분에 빠르게 몰도바 지역으로 피해올 수 있었어요.”
2019년, 쿠즈멘코 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 생계의 어려움으로 가족 모두가 위험한 환경에 놓여있었습니다. 당시 가족은 낡은 호스텔에 살고 있었는데, 버려진 지 80년이 넘은 탓에 천장, 벽, 바닥 모든 곳이 낡고 더러워 아직 어린 세 아이들의 위생에 치명적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기저귀, 음식, 옷과 같은 필수품조차 살 수 없는 극심한 빈곤 상태에 놓여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했던 건, 엄마 올가의 상태였습니다.
“제 어린시절은 불안하기만 했어요. 엄마는 알코올 중독에, 제대로 학교에 갈 수도 없었죠. 지금도 자주 불안하고, 슬프고, 화나고, 그러다가 무기력해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 지 모르겠어요… “
올가의 심각한 심리 상태는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심각한 영양 부족, 부모의 돌봄이 없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신체적, 정서적 발달이 모두 뒤처지고 있었습니다.
2019년 우크라이나 빈곤 가정 지원 당시 쿠즈멘코 가족
더펠로우십은 쿠즈멘코 가족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먼저, 가족들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체적, 심리적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엄마인 올가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요리, 청소 등 집안일과 자녀 양육법에 대해 교육을 진행하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심리 치료도 병행했습니다. 세 아이들은 전체적인 건강 및 발달 상태를 검사하고, 필요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2019년 우크라이나 빈곤 가정 지원 당시 쿠즈멘코 가족
또한, 아이들이 유치원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필요한 심리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다음은, 거주 환경과 일상이 안정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원래 살고 있던 버려진 건물을 벗어나 지토미르 지역의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도록 하고, 필수품인 식량, 의류, 기저귀 등을 지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가장인 아빠가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쿠즈멘코 가족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 년 후, 쿠즈멘코 가족은 더 이상 더펠로우십의 도움 없이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아들의 이름을 ‘예키엘(Yechiel, 더펠로우십 설립자의 이름)’으로 바꿨어요.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고요. 더펠로우십의 친절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많은 것들을 새로 노력해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기뻐요. 오랜 시간,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쿠즈메코 가족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불안한 상황 속에 있지만 엄마 올가는 씩씩하게 아이들을 챙기고 웃음을 보입니다.
“이번에도 더펠로우십의 도움이 우리 가족을 살렸어요. 이제 지토미르를 떠나 몰도바로, 몰도바에서 이스라엘로 갑니다. 다시 또, 이겨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어린시절, 모든 것을 빼앗기고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버텨온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80년이 지난 지금 공포로 새겨진 전쟁을 다시 마주하고 있습니다.
안나, 몰도바 지역 난민 대피소 앞 마당에서
“어렸을 땐, 불가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살았었어요. 9살이 되던 해에 나치를 피해서 우크라이나로 오게됐죠. 사람들이 굶주리고, 죽어 가는 모습을 매일 같이 봤어요. 80년이 흘러서 이제 89살이 되었는데, 또 도망쳐야 하네요. 같은 일이 또 반복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 홀로코스트 생존자 안나(89세)
“또 다시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생기다니… 이번이 세 번째예요. 첫번째는 어린 시절에 나치로부터 도망쳤을 때고, 두번째는 2014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 때였어요. 그 후에 지토미르에 자리를 잡았고, 이제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떠나야 하네요.”
– 홀로코스트 생존자 조야와 마이클
“태어난 순간부터 생존을 위해 살아왔어요. 모든 고생은 이제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지난 몇 주 동안 너무 무서웠어요. 사이렌 소리가 막 울리는데… 지팡이 없이는 움직일 수도 없어서 화장실에 숨어서 끝날 때까지 기다렸죠. 지금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계속 받아야하는 상황이라서…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요.”
- 홀로코스트 생존자 아이다(82세)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또 다시 도망쳐야 하는 현실에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더펠로우십은 현지에 남아있는 생존자들을 안전한 몰도바 지역 난민 대피소로 대피시키고, 식사, 음료, 의류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용기를 통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난민들을 이스라엘로 이송하고 있습니다.
조야와 마이클, 이스라엘 행 더펠로우십 전용기 안에서
“대피소에서, 그리고 이스라엘행 비행기 안에서 더펠로우십이 제공해준 따뜻한 쉼터와 물, 음식 그리고 친절한 모든 분들 덕분에 이제서야 지난 며칠 동안 불안했던 마음이 놓여요. 감사합니다.”
– 홀로코스트 생존자 조야와 마이클
“안전한 쉼터를 제공해준 더펠로우십에게 감사해요. 전쟁을 다시 또 겪고 있긴 하지만, 크게 다른 점이 있어요. 1941년, 제가 9살일땐 주변에서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있어요. 감사해요.”
– 홀로코스트 생존자 안나(89세)
아이다, 몰도바 지역 난민 대피소에서 이스라엘 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우크라이나)키이우에서 이스라엘까지, 더펠로우십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장시간 이동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 안전한 곳에 와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돼요. 모든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미국에서 설립되어 이스라엘을 비롯 전 세계 20여개국에서 40년간 활동 중인 더펠로우십은 국내에서는 동구권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돕는 유일한 구호단체입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이후 그 어떤 나라보다 저희 재단과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우크라이나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현지를 돕기 위해 400만 달러(약 49억원) 규모의 긴급 구호 자금을 기반으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약 40만명의 이재민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음식은 물론 의약품, 난방기구와 같은 필수적인 구호품을 전달할 수 있는 자원 봉사자 네트워크를 가동해 최전방에서 보호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폴란드, 몰도바, 헝가리, 루마니아 등 네 곳의 국경을 통해 탈출을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3월 11일, 몰도바 국경에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현장에 더펠로우십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국경에 있는 키시네프에서 오데사에서 탈출해 온 140여 명의 피난민들과 함께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현지 기관들과 협력해 이들의 안전한 이동을 돕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_ 더펠로우십 현장 지원팀 가디(Gadi)
더펠로우십은 지토미르 지역에서 91명의 고아원 아이들 탈출을 돕고, 이스라엘로 이주를 원하는 사람들의 수송을 돕고 있으며, 현장 상황에 맞춰 다음과 같은 여러 조치들을 즉각적으로 취하며 긴박한 어려움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비상 핫라인 전화 운영
공동체 내 보완 알람시스템 강화
피난을 위한 이동 교통 지원
위성 통신 기능 확보
식량 및 의약품 제공
기반시설 붕괴시 운영할 자원봉사자 모집
정신적, 정서적 도움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우크라이나 전역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특히, 더펠로우십이 오랫동안 후원해온 오데사 지역의 고아원 아이들과 홀로코스트 생존자 할머니들 그리고 오데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들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역이 속히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해주세요.
지난 30년 간 우크라이나의 홀로코스트 생존자 및 빈곤가정들을 지원해온 더펠로우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쟁이 일어나기 2주 전 지원팀이 방문해 구호 체계 구축을 위한 현장 점검을 진행했으며, 전쟁 발발 후 신속히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커뮤니티들과 협력해 탈출을 돕고 있습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현지를 돕기 위해 100만 달러(약 12억원) 규모의 긴급 구호 자금 조성을 목표로 후원자들과 힘을 모으고 있으며, 현재 현장 직원, 자원 봉사자, 협력 단체들이 격렬한 시가전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현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치토미르 지역, 모이세방코 가족은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3일 내내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엄마 자하나(33)는 10살, 7살 아직 어린 두 딸이 위험에 빠지진 않을지, 걱정에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3일 전부터 계속 군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폭발음이 들려오고 있어요. 전쟁이 계속되는 건 아닐지, 모든 걸 잃게 되진 않을지… 불안해요. 무엇보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혹시 안 좋은 상황이 생길까 봐 너무 무서워요.”
언제든 폭격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 모이세방코 가족은 지난 3일 동안 지하 창고에 숨어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더펠로우십의 도움을 받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적지인 카르파티아(Karpaty) 지역까지, 혹시 모를 폭격의 위험이 있는 넓은 도로는 달릴 수 없어 버스로 6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먼 길이지만 모이세방코 가족은 이제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입니다.
출처 : IFCJ 현장, 직원 발레이아 클라치크(Valeria Klatzik)
또한 더펠로우십은 폴란드와 헝가리, 몰도바, 루마니아 네 곳의 국경을 통해 이스라엘로 탈출하고자 하는 유대인들을 돕는 특별 구호 프로그램도 시행중입니다. 이미 첫 그룹을 실은 더펠로우십 비행기가 전쟁 발발 3일 째인 26일 16시간의 우크라이나 내 작전 수행을 통해 이스라엘로 들어왔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이스라엘에서도 이들의 안정과 정착을 지원할 계획이며, 현장에서 공포와 위협에 처한 우크라이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가족들의 탈출을 계속 도울 것입니다. 더펠로우십의 우크라이나 구호에 함께 해주세요.
"수년 동안 지속해온 우크라이나 구호 사업을 통해 빈곤 가정 및 노인,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삶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지금 국가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를 대비해 지난 몇 주 동안 구호 활동을 준비해 왔습니다. 바라지 않았던 상황에 직면해 있는 지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지원 활동을 지속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 야엘 엑스타인(Yael Eckstein, 더펠로우십 국제 본부 CEO)
더펠로우십은 동구권 구호 사업의 지속적 확장을 통해 확보한
협력기관 네트워크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필수 구호 물품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현장 상황에 맞추어 다음과 같은 여러 조치들을 즉각적으로 취하며 긴박한 어려움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 비상 핫라인 전화 운영 • 공동체 내 보안 알람시스템 강화 • 피난을 위한 이동 교통 지원 • 위성 통신 기능 확보 • 식량 및 의약품 제공 • 기반시설 붕괴 시 운영할 자원봉사자 모집 • 정신적, 정서적 도움
더불어, 추가 발생 가능한 긴급 상황을 대비해 단기 장기 대피 계획, 대피소 확보, 피해 복구 지원 등 구호 규모를 더욱 확장할 계획입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할 수 있는 건 전부 후원자님의 사랑과 지지 덕분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은 더펠로우십의 책임이며, 전쟁에 대한 두려움보다 중요한 건 이들의 삶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아슈켈론 지역에 살고 계신 85세의 이다 할머니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벨라루스의 한 마을에 살고 있던 한 유대인 가족의 일상은 전쟁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때 내가 겨우 5살이었는데,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어요. 피란 열차 옆으로 폭탄이 수도 없이 떨어졌고,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고 느껴요.”
전쟁이 끝나고 다시 살던 동네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져 있었습니다. 반유대주의로 인한 차별은 끝나지 않았고, 이다 할머니는 고향을 떠나 이스라엘에서 새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견뎌내야 합니다. 이다 할머니는 태어났을 때부터 앓았던 병으로 인해 곁에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지금 할머니에겐 아무도 없습니다.
더펠로우십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이다 할머니를 잊지 않았습니다. 주기적으로 찾아가 음식을 전달하고,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아무도 곁에 없다는 외로움이 가장 힘들어요. 더펠로우십이 찾아와줘서 너무 다행이에요.”
이다 할머니의 삶은 후원자님의 도움으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잊지 않아 주셔서, 기억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국제IFCJ 본부는 이스라엘 내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피해에 대처하기 위해 5 백만 달러의 비상 기금을 조성하였습니다. 해당 기금은 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포함한 이스라엘 노인들에게 음식과 손 소독제, 그리고 필수 물품들을 지원하는데 사용됩니다.
국제IFCJ 본부는 식량과 생필품이 필요한 15,000 명의 이스라엘 노인들을 지원하는 ‘With Dignity and Fellowship’ 사역을 통해 긴급 지원을 제공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추가로 15,000명 이상의 75세 이상의 노인들을 더 돕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금의 일부는 인공 호흡기와 같은 의료 장비를 이스라엘 병원에 제공 할 것입니다.
국제IFCJ는 3 월 중순에 시작된 초기 5 백만 달러 이상의 비상 기금을 넘어 COVID-19 구호 활동을 계속 확대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새로운 이민자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수프 키친에 추가 자금지원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긴급 식품지원은 전달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소련의 파트너들에 대한 자금을 늘려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Fellowship Hospitality Vehicles’는 각각의 보호소를 방문하여 이 어려운 시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줍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한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갑니다. 여전히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고통 속에 놓여있고, 과거의 평화로운 일상 또한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피해 가장 소중한 물건 몇 가지만 겨우 챙겨 도망쳐온 사람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남은 사람들 모두 폭격과 화재로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식량, 생필품, 의료 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더펠로우십은 30년간 구호 활동을 펼쳐온 동구권의 대표 사업지 우크라이나 지역의 회복을 위해 음식, 생활용품, 의약품 등 매주 30톤에 달하는 구호 물품을 비행기로 전달하여 난민 대피소로 피신한 난민들의 안전과 이주를 돕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몰도바 국경까지 대피를 위한 버스 운행, 식량 및 기본 생필품, 그리고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 있는 항공편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몰도바 영공이 완전히 폐쇄되어 비행기 운항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대규모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더펠로우십의 비행기를 통해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이스라엘로 이송할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 발발 후 지금까지, 지토미르 지역 91명의 고아원 아이들 탈출을 비롯하여 더펠로우십의 항공기를 20회 이상 운항하며 총 2,659명(2022.04.07 기준)이 이스라엘로 올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난민을 이스라엘로 이송하는 ’알리야’ 사업은 현재 법적 절차, 이송 및 정착 지원을 비롯한 전 과정을 이스라엘 외무부, 이민 통합부와 함께 진행하고 있으며, 전쟁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이스라엘로 입국하길 원하는 인원이 증가함에 따라 이송 규모를 확대하고 입국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고자 이스라엘 당국과 조율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입국을 요청한 난민들은 더펠로우십이 운영하는 항공편을 통해 이스라엘로 이송되며,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초기 주거비, 식량, 의류 등 기초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앞으로도 국경에서의 대피소 지원과 더불어 이스라엘행 비행기 운항을 통해 더 많은 난민들을 이송할 계획입니다.
“일어날 줄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들이닥치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다행히 더펠로우십의 도움 덕분에 이스라엘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여러 복잡한 과정들도 모두 순조롭게 준비할 수 있었어요. 우크라이나를 떠나 이제 이스라엘에서 펼쳐질 새로운 삶이 기대도 되고, 사실 걱정도 돼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과 함께 안전한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이에요. 너무 기쁘고 감사해요.”
- 빅토리아 마르코프스키 (37세)
후원자님 덕분에 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 놓인 이들의 삶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더펠로우십은 도움의 손길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 응원 이벤트(1월 25일 ~ 3월 15일)를 통해 모인 한국 후원자님들의 응원 메시지가 지난 4월,
더펠로우십 푸드박스와 함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께 전달되었습니다. 지난 4월 레터에서 현장 소식의 일부를 전해드렸었는데요.
👉 이리나 할머니 소식 보러 가기(URL : http://www.ifcj.kr/?page_id=3566&uid=69&mod=document&pageid=1#kboard-document)
그 이후에도 따뜻했던 현장 소식들이 계속 한국 본부로 전해졌어요. 많은 분들이 따스한 마음과 응원 메시지를 작성해 주신 덕분이에요.
기쁨과 웃음이 함께 했던 현장 이야기, 후원자님께 전해드립니다.
마리아(86세) 할머니가 태어난 곳은 벨라루스의 한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다섯 살, 어린 소녀의 삶은 전쟁과학살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직장에서 돌아와 얼른 대피할 준비를 하라고 말하셨어요. 어머니가 따뜻한 옷도 몇개 챙기려고 하니까,
아버지는 일주일 안에 돌아올 테니까 짐을 조금만 챙기라고 하셨죠. 아마 당시엔 모두가 잠깐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고 저도 그랬으니까요.”
계속되는 폭격, 눈 앞에 펼쳐진 끝없는 죽음 그리고 세 살 어린 동생이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세상을 떠나고 차가운 땅에 묻어야 했던 큰 고통의 기억은
평생 할머니를 괴롭혔습니다.
“아직도 가끔 나치가 나를 잡으려고 하는 악몽을 꿔요. 요즘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더 심해졌어요.
내가 겪었던 슬픔이 반복될 줄은 몰랐어요. 그때 겪었던 고통들이 다시 떠올라요.”
전쟁은 끝났지만, 마리아 할머니 가족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린 삶의 터전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마리아 할머니는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해 노력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서, 그리고 조산사로 일하며 가족들을 부양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땐, 할머니가 겪었던 고통을 기억하며 그곳에 남아 사람들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삶은 외롭고 무서울 때도 있지만 더펠로우십은 홀로 명절을 보낼 때마다 외로움을 느끼는 마리아 할머니에게 좋은 친구입니다.
“더펠로우십 덕분에 집도, 음식도, 친구도 생겨서 편안해요.
이젠 한국에 사는 친구들도 생겼네요. 한국에서 응원해주는 후원자님들께 감사해요"
외로움과 배고픔 속에 홀로 남겨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하루에 큰 행복과 기쁨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펠로우십 IFCJ는 외로움과 빈곤 속에 평생을 살아온 동구권 5만, 이스라엘 16만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식량, 난방, 의료서비스 및
무료급식소 지원을 통해 여러분의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서 3월, 약 한 달 동안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 기념 캠페인을 진행했었는데요.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따스한 마음과 응원 메시지를 작성해 주셨어요. 그리고 이번 4월, 더펠로우십 푸드박스와 함께 한국에서 보낸 메시지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께 전달되었습니다. 홀로코스트로 가족들을 잃고 홀로 외로운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생존자들에게 응원과 관심은 하루를 기쁘게 보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오랜만에 받아 본 편지라면서, 반가운 마음에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또 읽어 보시는 마음에 현지 직원의 마음도 따뜻해졌다고 해요.
“혼자 있을 땐 라디오를 켜 놓곤 해요. 누가 옆에 있는 것 같아 덜 외롭거든요.
더펠로우십이 찾아오는 날이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는 날이에요.
오늘은 특별하게 한국에서 온 편지도 있어서 기뻐요!”
이리나 할머니는 1941년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 전쟁 중에 태어나 어린 시절 내내 전쟁과 가난, 배고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가족들은 모두 우크라이나로 이주했고 이전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혼 생활 속에서 극심한 반유대주의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모든 고통을 떠나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순탄하지 않은 삶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이곳에서 안전하게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낼 수 있으니 감사할
뿐이에요. 지금 우크라이나가 전쟁 속에 있어서 마음이 아파요. 제가 살던 곳, 리비우도 참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모두가 안전하길 기도해요.”
더펠로우십이 30년 동안 동구권 구호 사업을 지속하며 가장 많은 빈곤 가정 지원 활동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쿠즈멘코 가족은 2019년 우크라이나 지역 지원 대상 가정으로 만나 수 년 동안 더펠로우십의 기초 생활 지원, 심리 및 자립 상담을 통해 안정적인 가정으로 자립할 수 있었던 가족입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피해 떠나온 쿠즈멘코 가족을 몰도바 공항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가족들은 이스라엘로 향하는 더펠로우십의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너무 무서웠어요.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계속 들리고, 몇몇곳은 폭격을 받아 무너졌어요. 며칠 동안은 아이들과 지하에 숨어 지내야 했어요. 더펠로우십 덕분에 빠르게 몰도바 지역으로 피해올 수 있었어요.”
2019년, 쿠즈멘코 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 생계의 어려움으로 가족 모두가 위험한 환경에 놓여있었습니다. 당시 가족은 낡은 호스텔에 살고 있었는데, 버려진 지 80년이 넘은 탓에 천장, 벽, 바닥 모든 곳이 낡고 더러워 아직 어린 세 아이들의 위생에 치명적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기저귀, 음식, 옷과 같은 필수품조차 살 수 없는 극심한 빈곤 상태에 놓여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했던 건, 엄마 올가의 상태였습니다.
“제 어린시절은 불안하기만 했어요. 엄마는 알코올 중독에, 제대로 학교에 갈 수도 없었죠. 지금도 자주 불안하고, 슬프고, 화나고, 그러다가 무기력해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 지 모르겠어요… “
올가의 심각한 심리 상태는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심각한 영양 부족, 부모의 돌봄이 없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신체적, 정서적 발달이 모두 뒤처지고 있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쿠즈멘코 가족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먼저, 가족들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체적, 심리적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엄마인 올가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요리, 청소 등 집안일과 자녀 양육법에 대해 교육을 진행하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심리 치료도 병행했습니다. 세 아이들은 전체적인 건강 및 발달 상태를 검사하고, 필요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2019년 우크라이나 빈곤 가정 지원 당시 쿠즈멘코 가족
또한, 아이들이 유치원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필요한 심리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다음은, 거주 환경과 일상이 안정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원래 살고 있던 버려진 건물을 벗어나 지토미르 지역의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도록 하고, 필수품인 식량, 의류, 기저귀 등을 지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가장인 아빠가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쿠즈멘코 가족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 년 후, 쿠즈멘코 가족은 더 이상 더펠로우십의 도움 없이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아들의 이름을 ‘예키엘(Yechiel, 더펠로우십 설립자의 이름)’으로 바꿨어요.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고요. 더펠로우십의 친절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많은 것들을 새로 노력해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기뻐요. 오랜 시간,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쿠즈메코 가족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불안한 상황 속에 있지만 엄마 올가는 씩씩하게 아이들을 챙기고 웃음을 보입니다.
“이번에도 더펠로우십의 도움이 우리 가족을 살렸어요. 이제 지토미르를 떠나 몰도바로, 몰도바에서 이스라엘로 갑니다. 다시 또, 이겨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어린시절, 모든 것을 빼앗기고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버텨온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80년이 지난 지금
공포로 새겨진 전쟁을 다시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땐, 불가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살았었어요. 9살이 되던 해에 나치를 피해서 우크라이나로 오게됐죠.
사람들이 굶주리고, 죽어 가는 모습을 매일 같이 봤어요. 80년이 흘러서 이제 89살이 되었는데, 또 도망쳐야 하네요.
같은 일이 또 반복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 홀로코스트 생존자 안나(89세)
“또 다시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생기다니… 이번이 세 번째예요. 첫번째는 어린 시절에 나치로부터 도망쳤을 때고,
두번째는 2014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 때였어요. 그 후에 지토미르에 자리를 잡았고,
이제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떠나야 하네요.”
– 홀로코스트 생존자 조야와 마이클
“태어난 순간부터 생존을 위해 살아왔어요. 모든 고생은 이제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지난 몇 주 동안 너무 무서웠어요.
사이렌 소리가 막 울리는데… 지팡이 없이는 움직일 수도 없어서 화장실에 숨어서 끝날 때까지 기다렸죠.
지금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계속 받아야하는 상황이라서…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요.”
- 홀로코스트 생존자 아이다(82세)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또 다시 도망쳐야 하는 현실에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더펠로우십은 현지에 남아있는 생존자들을 안전한 몰도바 지역 난민 대피소로 대피시키고, 식사, 음료, 의류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용기를 통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난민들을 이스라엘로 이송하고 있습니다.
“대피소에서, 그리고 이스라엘행 비행기 안에서 더펠로우십이 제공해준 따뜻한 쉼터와 물, 음식 그리고 친절한 모든 분들 덕분에
이제서야 지난 며칠 동안 불안했던 마음이 놓여요. 감사합니다.”
– 홀로코스트 생존자 조야와 마이클
“안전한 쉼터를 제공해준 더펠로우십에게 감사해요. 전쟁을 다시 또 겪고 있긴 하지만, 크게 다른 점이 있어요.
1941년, 제가 9살일땐 주변에서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있어요. 감사해요.”
– 홀로코스트 생존자 안나(89세)
아이다, 몰도바 지역 난민 대피소에서 이스라엘 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우크라이나)키이우에서 이스라엘까지, 더펠로우십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장시간 이동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 안전한 곳에 와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돼요.
모든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 홀로코스트 생존자 아이다(82세)
미국에서 설립되어 이스라엘을 비롯 전 세계 20여개국에서 40년간 활동 중인 더펠로우십은 국내에서는 동구권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돕는 유일한 구호단체입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이후 그 어떤 나라보다 저희 재단과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우크라이나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현지를 돕기 위해 400만 달러(약 49억원) 규모의 긴급 구호 자금을 기반으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약 40만명의 이재민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음식은 물론 의약품, 난방기구와 같은 필수적인 구호품을 전달할 수 있는 자원 봉사자 네트워크를 가동해 최전방에서 보호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폴란드, 몰도바, 헝가리, 루마니아 등 네 곳의 국경을 통해 탈출을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3월 11일, 몰도바 국경에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현장에 더펠로우십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국경에 있는 키시네프에서 오데사에서 탈출해 온 140여 명의 피난민들과 함께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현지 기관들과 협력해 이들의 안전한 이동을 돕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_ 더펠로우십 현장 지원팀 가디(Gadi)
더펠로우십은 지토미르 지역에서 91명의 고아원 아이들 탈출을 돕고, 이스라엘로 이주를 원하는 사람들의 수송을 돕고 있으며, 현장 상황에 맞춰 다음과 같은 여러 조치들을 즉각적으로 취하며 긴박한 어려움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우크라이나 전역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특히, 더펠로우십이 오랫동안 후원해온 오데사 지역의 고아원 아이들과 홀로코스트 생존자 할머니들 그리고 오데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들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역이 속히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해주세요.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세요.
지난 30년 간 우크라이나의 홀로코스트 생존자 및 빈곤가정들을 지원해온 더펠로우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쟁이 일어나기 2주 전 지원팀이 방문해 구호 체계 구축을 위한 현장 점검을 진행했으며,
전쟁 발발 후 신속히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커뮤니티들과 협력해 탈출을 돕고 있습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현지를 돕기 위해 100만 달러(약 12억원) 규모의 긴급 구호 자금 조성을 목표로
후원자들과 힘을 모으고 있으며, 현재 현장 직원, 자원 봉사자, 협력 단체들이
격렬한 시가전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현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치토미르 지역, 모이세방코 가족은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3일 내내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엄마 자하나(33)는 10살, 7살 아직 어린 두 딸이 위험에 빠지진 않을지, 걱정에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3일 전부터 계속 군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폭발음이 들려오고 있어요.
전쟁이 계속되는 건 아닐지, 모든 걸 잃게 되진 않을지… 불안해요. 무엇보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혹시 안 좋은 상황이 생길까 봐 너무 무서워요.”
언제든 폭격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
모이세방코 가족은 지난 3일 동안 지하 창고에 숨어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더펠로우십의 도움을 받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적지인 카르파티아(Karpaty) 지역까지, 혹시 모를 폭격의 위험이 있는 넓은 도로는 달릴 수 없어
버스로 6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먼 길이지만 모이세방코 가족은 이제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입니다.
또한 더펠로우십은 폴란드와 헝가리, 몰도바, 루마니아 네 곳의 국경을 통해 이스라엘로 탈출하고자 하는 유대인들을 돕는 특별 구호 프로그램도 시행중입니다. 이미 첫 그룹을 실은 더펠로우십 비행기가 전쟁 발발 3일 째인 26일 16시간의 우크라이나 내 작전 수행을 통해 이스라엘로 들어왔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이스라엘에서도 이들의 안정과 정착을 지원할 계획이며, 현장에서 공포와 위협에 처한 우크라이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가족들의 탈출을 계속 도울 것입니다. 더펠로우십의 우크라이나 구호에 함께 해주세요.
"수년 동안 지속해온 우크라이나 구호 사업을 통해 빈곤 가정 및 노인,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삶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를 대비해 지난 몇 주 동안 구호 활동을 준비해 왔습니다.
바라지 않았던 상황에 직면해 있는 지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지원 활동을 지속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 공동체 내 보안 알람시스템 강화
• 피난을 위한 이동 교통 지원
• 위성 통신 기능 확보
• 식량 및 의약품 제공
• 기반시설 붕괴 시 운영할 자원봉사자 모집
• 정신적, 정서적 도움
위기의 우크라이나에서 더욱 힘겨워진 발레리아와 동생들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던 동구권 지역은 수많은 유대인이 죽음에 이른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 살아가고 있는 27만여 명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더펠로우십은 빈곤 가정과 어린이를 중심으로 현지 단체 FJC(Federation of Jewish Communities of the CIS)와 협력하여
식량, 의류, 의료, 교육을 지원하고 World ORT와 협력하여 유대인 학교의 급식과 스쿨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티모키니 가족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벽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철거 직전의 허름한 건물 안, 여섯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1901년에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지어졌던 이 위험하기까지 한 낡은 건물은 버려진 지 오래되어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물, 가스, 전기 모두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신체적인 어려움으로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첫째인 발레리아 티모키니는 그림에 재능이 있어 화가가 되는 걸 꿈꿨지만,
당장 아픈 부모님 대신 세 명의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게 먼저입니다.
특히 8살인 셋째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언어 장애를 겪고 있어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매일 겪어야 하는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언제 이 낡은 집마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큰 아이도 아직 어린아이인데, 아이의 간절한 꿈도 지켜주지 못하고… 그저 매일 배고픈 상황을 견뎌내게 해야 하니…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더펠로우십은 티모키니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내일을 꿈꿉니다.
티모키니 가족이 배고픔 속에 남겨지지 않도록, 식료품과 생활 용품을 지원하고
첫째인 발레리아가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미술 수업과 심리 상담을,
치료가 필요한 셋째 아이에겐 언어 치료와 상담을 지원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집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던 우리 가족의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더펠로우십 덕분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싶어요.”
우리의 사랑은 식탁 위의 빵이 되기도, 추위를 막아주는 담요가 되기도,
한 아이가 미래를 적어 내려가는 연필과 공책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한 가족의 하루를, 한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곁에 없다는 외로움이 가장 힘들어요. 더펠로우십이 찾아와줘서 너무 다행이에요”
이스라엘 아슈켈론 지역에 살고 계신 85세의 이다 할머니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벨라루스의 한 마을에 살고 있던 한 유대인 가족의 일상은 전쟁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때 내가 겨우 5살이었는데,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어요.
피란 열차 옆으로 폭탄이 수도 없이 떨어졌고,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고 느껴요.”
전쟁이 끝나고 다시 살던 동네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져 있었습니다.
반유대주의로 인한 차별은 끝나지 않았고, 이다 할머니는 고향을 떠나 이스라엘에서 새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견뎌내야 합니다.
이다 할머니는 태어났을 때부터 앓았던 병으로 인해 곁에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지금 할머니에겐 아무도 없습니다.
더펠로우십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이다 할머니를 잊지 않았습니다.
주기적으로 찾아가 음식을 전달하고,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아무도 곁에 없다는 외로움이 가장 힘들어요. 더펠로우십이 찾아와줘서 너무 다행이에요.”
이다 할머니의 삶은 후원자님의 도움으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잊지 않아 주셔서, 기억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국제IFCJ 본부는 이스라엘 내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피해에 대처하기 위해 5 백만 달러의 비상 기금을 조성하였습니다. 해당 기금은 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포함한 이스라엘 노인들에게 음식과 손 소독제, 그리고 필수 물품들을 지원하는데 사용됩니다.
국제IFCJ 본부는 식량과 생필품이 필요한 15,000 명의 이스라엘 노인들을 지원하는 ‘With Dignity and Fellowship’ 사역을 통해 긴급 지원을 제공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추가로 15,000명 이상의 75세 이상의 노인들을 더 돕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금의 일부는 인공 호흡기와 같은 의료 장비를 이스라엘 병원에 제공 할 것입니다.
국제IFCJ는 3 월 중순에 시작된 초기 5 백만 달러 이상의 비상 기금을 넘어 COVID-19 구호 활동을 계속 확대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새로운 이민자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수프 키친에 추가 자금지원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긴급 식품지원은 전달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소련의 파트너들에 대한 자금을 늘려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Fellowship Hospitality Vehicles’는 각각의 보호소를 방문하여 이 어려운 시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