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10월 7일 하마스 테러 이후
전세계에 반유대주의가 급증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보호 받지 못한 채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로의 이주(알리야)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지난 8월 1일 생존의 위협 속에 자유를 찾아
프랑스를 떠난 155명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도착했습니다!
이 중 85세 할머니부터 1세 증손녀까지
4대가 함께 이스라엘로 오게 된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만약 오래 살아온 나의 고향에서
‘한국인’임을 숨기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어떨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프랑스에 사는 유대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최근 프랑스 내 반유대주의가 점점 확산되면서
불안 속에 생활하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전쟁 중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이주를 결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85세 헨리에트 할머니 가족도 증손녀까지
총 4세대(9명)가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하였습니다.
손녀 레아(32세)는
‘프랑스에서 약학 대학을 졸업한 후
좋은 직업을 가지며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기에
프랑스를 떠나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프랑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늘 불안했던 삶에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어릴 때 제가 외출을 하면 어머니는 무슨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집에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어요. 제 아이들에게는 이런 불안한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어릴 때 제가 외출을 하면
어머니는 무슨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집에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어요.
제 아이들에게는 이런 불안한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20대인 손자들도 프랑스에서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불안함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테러와 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안전을 위해 정체성 숨기고 살아가야 했다’
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테러사건이 프랑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키파(kippah, 유대인 전통 모자)를 쓰면 공격을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유대인임을 숨겨야 했기에 키파를 쓸 수 없었어요. 제 정체성을 숨기면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테러사건이
프랑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키파(kippah, 유대인 전통 모자)를
쓰면 공격을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유대인임을
숨겨야 했기에 키파를 쓸 수 없었어요.
제 정체성을 숨기면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프랑스의 야아코브 랍비는
“반유대주의가 심해져 유대인 공동체가
큰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대로라면
유대인들이 10년 내에 모두 떠나야 할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10월 7일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테러 이후
프랑스 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들도 급증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프랑스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의
한 유대교 회당에 불을 지르거나,
파리올림픽에서 이스라엘 팀 경기 중에
관중석에서 반유대주의 행위를 하는 등
유대인들이 다양한 증오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반유대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증오 중 하나이며
안타깝게도 지금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 덕분에
많은 유대인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삶과 자유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이어
레바논 헤즈볼라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 요즘
우리는 혐오와 반유대주의로 시작된
홀로코스트 사건의 참혹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지난 6월 더펠로우십 국제본부 폴 라니어 이사장은
인간의 잔혹함과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홀로코스트의 상징이자 전세계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장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 영화지요.
라니어 이사장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체험한
생생한 역사적 현장이야기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기로 해요!
** 영상도 준비되어 있으니
하단에서 확인해보세요! **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2차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폴란드에 설립한 강제 수용소로,
유대인을 비롯한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으며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장소입니다.
라니어 이사장은 가장 오래된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
가스실을 사용하여 대량학살이 이루어졌던
가장 큰 제2수용소 비르케나우,
그리고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 모노비츠를 둘러보았는데요.
그곳에 남아 있는 수용소의 흔적들과
희생자들의 유품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가장 충격을 느꼈던 것은 머리카락 전시관이었습니다. 결혼을 위해 길렀던 젊은 유대인 소녀들의 머리카락을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모두 잘라버린 머리카락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충격을 느꼈던 것은
머리카락 전시관이었습니다.
결혼을 위해 길렀던 젊은
유대인 소녀들의 머리카락을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모두 잘라버린 머리카락이었습니다.”
이사장은 이곳의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신께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신앙을 지켰던
흔적들을 보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학살이 이루어졌던 아우슈비츠 곳곳에서 유대인들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자기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학살이 이루어졌던
아우슈비츠 곳곳에서 유대인들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자기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나치가 저지른 악행은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가 서있는 곳은 아우슈비츠로 강제 수송되는 유대인을 가득 실은 차가 다니는 철로입니다. 당시 이용된 동물수송용 기차 한 칸에 압사될 정도로 사람들을 가득 채워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송했습니다. 하지만 서있기도 힘든 기차를 타게 되었는데도 유대인들은 신께 기도할 때 꼭 필요한 숄을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치가 저지른 악행은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가 서있는 곳은 아우슈비츠로 강제 수송되는
유대인을 가득 실은 차가 다니는 철로입니다.
당시 이용된 동물수송용 기차 한 칸에 압사될 정도로
사람들을 가득 채워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송했습니다.
하지만 서있기도 힘든 기차를 타게 되었는데도
유대인들은 신께 기도할 때 꼭 필요한
숄을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라니어 이사장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꽉 찬 하루를 보냈는데요.
수용소에서의 역사적 순간들을 마주하며
'많은 생각이 들고 머릿속이 복잡했다'고 전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한 것은 매우 가슴 아픈 경험이었습니다. 수용소의 잔해와 그곳에 남아 있는 유품들은 그 당시의 비극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과 희생을 생각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면서 더펠로우십이 유대인을 돕기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한 것은
매우 가슴 아픈 경험이었습니다.
수용소의 잔해와 그곳에 남아 있는 유품들은
그 당시의 비극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과 희생을 생각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면서 더펠로우십이 유대인을 돕기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어 라니어 이사장은 더펠로우십의
모든 후원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후원 덕분에 더펠로우십이 전세계 흩어져 오랜 박해 속에 있는 유대인을 돕는 일을 계속 해올 수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을 통해 여러분의 후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후원자님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반유대주의로 고통받고 소외된 유대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며 함께 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 계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스라엘이 평화와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후원자님이 계속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후원 덕분에 더펠로우십이
전세계 흩어져 오랜 박해 속에 있는 유대인을
돕는 일을 계속 해올 수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을 통해 여러분의 후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후원자님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반유대주의로 고통받고
소외된 유대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며 함께 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 계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스라엘이
평화와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후원자님이 계속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라니어 이사장의 아우슈비츠 방문기를
🔽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
영상보기
매일 계속되는 레바논 헤즈볼라의 폭격으로
이스라엘 북부 지역이 위기 속에 있습니다.
하루빨리 평화로운 일상이 되찾아지도록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후원참여하기
우크라이나 리비우에 사는 리우보브는
세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21살인 큰아들 이반은 여러가지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걷지도 못해 항상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주변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리우보브는
늘 집에서 아들의 병간호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일을 하지 못하고 매달 이반의 장애 수당으로
네 가족이 겨우 생활해왔는데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는 듯했던 그녀가
드디어 위안과 쉼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작은 나눔이 리우보브와 이반 가족에게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지 함께 확인해보아요!
올해 44세의 싱글맘 리우보브는 아픈 큰아들 이반(21세),
어린 안톤(10세), 리오라(2세)와 함께 살고 있는데요.
큰 아들 이반은 신체 기능을 조절할 수 없어 걷지도 못하며
선천성 심장병, 간질, 운동 장애 등의
여러 질병과 장애을 가지고 있어
늘 곁에서 돌봄이 필요합니다.
"이반의 잦은 발작으로 밖에 데리고 나갈 수가 없어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거든요. 집에서 항상 제가 돌봐야 하니 어린 딸 리오라도 덩달아 밖에서 놀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어요. 딸에게 너무 미안하죠."
"이반의 잦은 발작으로 밖에 데리고 나갈 수가 없어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거든요.
집에서 항상 제가 돌봐야 하니 어린 딸 리오라도
덩달아 밖에서 놀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어요.
딸에게 너무 미안하죠."
현재 가족이 살고 있는 지역은 너무 낙후되어
재개발이 필요한 상태지만 전쟁 중이라
국가로부터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족의 수입은
이반의 장애 수당(월 $183, 한화 약 25만원)과
소정의 돌봄 수당이 전부인데요.
네 가족의 생활비로도 턱없이 부족하기에
집수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리우보브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에서
홀로 자녀들을 돌보는 엄마가
처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이렌이 울리면 저는 혼자서 세 아이를 대피소로 대피시켜야 해요. 두 아이는 어리고 이반은 움직이지 못해서 세 아이 모두 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대피소와 집을 두 번 왔다 갔다 해야 하죠. 어린 두 자녀를 먼저 대피실로 데려다 놓고 다시 이반을 데리러 다시 집으로 갑니다. 한 번은 사이렌이 울려서 두 아이를 먼저 데리고 나가려고 하는데 이반이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사람들은 이반을 그냥 집에 두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제가 엄마인걸요.
사이렌이 울리면 저는 혼자서
세 아이를 대피소로 대피시켜야 해요.
두 아이는 어리고 이반은 움직이지 못해서
세 아이 모두 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대피소와 집을 두 번 왔다 갔다 해야 하죠.
어린 두 자녀를 먼저 대피실로 데려다 놓고
다시 이반을 데리러 다시 집으로 갑니다.
한 번은 사이렌이 울려서 두 아이를 먼저 데리고 나가려고 하는데
이반이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사람들은 이반을 그냥 집에 두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제가 엄마인걸요.
전시 상황에서 홀로 세 아이들과
버티기 힘들었던 엄마 리우보브는
도움의 손길을 전해준
더펠로우십 후원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왔습니다. 집 밖에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창살 없는 감옥 그 자체였어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씩 건강한 일상을 회복해가고 있어요!
지금까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왔습니다.
집 밖에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창살 없는 감옥 그 자체였어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씩 건강한 일상을 회복해가고 있어요!
더펠로우십은 리우보브 가족이
생활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음식과 약 등을 구입할 수 있는 바우처,
아이들 옷과 학용품 그리고 아픈 이반을 함께 돌봐 주는
케어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먼 곳에 있는 저의 아픔과 어려움에 관심과따뜻한 후원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갇혀 있고 우울한 나날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부족한 지원금 안에서 음식과 의약품, 생필품, 아이들 학용품 중 하나만 선택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더이상 집에만 메어 있지 않아도 돼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밖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원자님들이 하시는 선한 나눔이 우리 가족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먼 곳에 있는 저의 아픔과 어려움에 관심과
따뜻한 후원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갇혀 있고
우울한 나날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부족한 지원금 안에서
음식과 의약품, 생필품, 아이들 학용품 중
하나만 선택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더이상 집에만 메어 있지 않아도 돼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밖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원자님들이 하시는 선한 나눔이
우리 가족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오늘, 누군가의 삶에 희망의 빛이 됩니다.
함께라면 우리는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의 소중한 후원으로 변화가 시작됩니다.
하마스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 남부 국경 지역에 사는 가족들은
한동안 아기들을 위한 음식, 기저귀 등
기본적으로 필요한 유아 용품들을 살 수 없었습니다.
생계를 잃은 많은 가족들에게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더펠로우십은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을 찾아
아기의 나이에 따라 적절한 음식과 필요 물품들을 담은
유아용 더펠로우십박스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오른쪽 몸이 마비되어 장애를 앓고 있고,
그래서 계속 약을 복용해야 해요.
2살 짜리 딸과 이제 막 1살이 된 아들이 있는데
수유를 할 수 없어서 아이들을 위한 분유가 필요하죠.
더펠로우십이 보내주는 분유와 기저귀는
우리 가족에게 생명줄과 같아요.
전쟁 중에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더욱 고맙습니다."
- 나탈리 (Natalie)
전쟁이 시작된 지
9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과 아기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어린 아이와 함께 전쟁을 겪고 있는
가족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세요!
지난 7월 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수십 발의 로켓이 떨어져 어린이 병원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키이우뿐만 아니라 드니프로, 크리비리흐,
슬로비안스크 등 여러 도시가 공격을 받아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수백만 명의 전쟁 피해자들,
특히 심신이 취약한 어린아이와 가족들을 위해
구호 물품과 음식, 의약품, 생필품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더해주세요!
"더펠로우십은 후원자님의 따뜻한 후원으로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수만 명의 저소득층 빈곤 가정, 어린이, 장애인 및 노인들의
안정적인 생계를 위해
음식과 약품의 제공뿐 아니라
가정 방문 및 치료 지원 등으로 돕고 있습니다."
올해 80세 그리고리 할아버지는
2022년 아내의 죽음과 전쟁이라는
큰 재난을 연달아 두 번이나 겪으며
한 동안 삶의 의욕을 잃었습니다.
"2022년 사랑하는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불과 열 주 만에 세상을 떠나고얼마 지나지 않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어요."
"2022년 사랑하는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
불과 열 주 만에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어요."
할아버지는 아내와 함께한 소중한 사진들을 보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가 죽었을 때,내 삶도 끝난 것 같았어요.그때 삶의 의욕이 모두 사라졌었죠."
"아내가 죽었을 때,
내 삶도 끝난 것 같았어요.
그때 삶의 의욕이 모두 사라졌었죠."
전쟁이 발발하자 계속되는 폭격 소리에 두려움에 휩싸였고,
물가 상승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고 합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는 중에전쟁까지 일어나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하지만 더펠로우십의 지원 덕분에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어요!"
"아내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는 중에
전쟁까지 일어나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더펠로우십의 지원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어요!"
더펠로우십 협력기관인 오데사의 헤세드 센터에서
그리고리 할아버지를 방문해
"앞으로도 계속 돌봐줄 것"이라며 격려해주었고
이를 통해 할아버지는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또한, 할아버지 삶에 큰 힘이 된 존재는
돌보미인 '나타센카' 입니다.
할아버지는 그녀가 자신의 딸과 같다고 했습니다.
"나타센카는 딸처럼저의 세세한 것 모두 챙겨줍니다.요리, 청소, 장보기 등 집안일과공과금 내는 일 등저의 생활의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어요.또한, 요금이 과다 청구됐을 때직접 찾아가서 항의도 대신 해주기도 해요.저에게 정말 딸과 같이 고맙고도없어선 안 될 존재이죠."
"나타센카는 딸처럼
저의 세세한 것 모두 챙겨줍니다.
요리, 청소, 장보기 등 집안일과
공과금 내는 일 등
저의 생활의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어요.
또한, 요금이 과다 청구됐을 때
직접 찾아가서 항의도 대신 해주기도 해요.
저에게 정말 딸과 같이 고맙고도
없어선 안 될 존재이죠."
더펠로우십은 그리고리 할아버지가
홀로 외롭게 어려운 시기를
보내지 않도록
의료 서비스, 절기 음식,
온라인 커뮤니티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특별 스마트폰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더펠로우십의 지원 덕분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도움을 요청할 곳이 있고
더펠로우십에서 제공한 은행 카드로
필요한 음식과 약을 살 수 있게 되었다"며
한국 후원자들께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더펠로우십 글로벌 CEO 야엘 엑스타인이
연일 이어지는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키르얏 시모나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페레츠 가족을 만나 깊은 위로를 나누었습니다.
대피소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페레츠 가족은
할머니와 손자까지 3대가 지내고 있는데
언제 이 폭격이 끝날 지 몰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긴급 대피소 키트'를
통해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여러분의 따뜻한 후원이 페레츠 가족들에게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지 확인해보세요!
헤즈볼라가 레바논 국경지역과 근접해있는
이스라엘 북부지역을 향해
3,000발 이상의 로켓을 발사를 하면서
북부 지역의 안보 상황이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또한 최근 이스라엘군에 의해
헤즈볼라 최고위급자가 사망하면서
보복성으로 이스라엘 북부에 로켓과 드론을
무자비로 공격하면서 이스라엘-레바논의
전면전에 대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요.
레바논 국경에서 2km 떨어진
북부 도시 키르얏 시모나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아
주민 23,000명 중 80%가 대피를 한 상황입니다.
매일 계속되는 로켓 공격으로 가족들은
몇 주 동안 대피소에만 고립되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패니 할머니는
"이곳에 방치된 느낌이에요.
너무 외로워요.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아요.
매일 아침 제 딸이 로켓 공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가 먹을 것을 사 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가족 모두가 굶게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엄마 태미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특히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조그만 아이들이 폭격 소리,
사이렌 소리 등으로 인한
전쟁의 공포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그 공포를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만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원자님의 따뜻한 후원으로
더펠로우십이 페레츠 가족에게
대피소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 아이들 장난감 등을 담은
긴급 구호 키트와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더펠로우십과 많은 후원자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이스라엘 전쟁 속에
대피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는 사람에게
협력기관 "수프 키친"에서
조리한 따뜻한 음식을 나누는 일을 매일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레바논과 근접해 있는
이스라엘 최북단 도시 기르얏 쉬모나의
베이트 바트야 수프 키친은
헤즈볼라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요리사 베니는 끝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이 곳을 지키고 있는데요.
덕분에 많은 이들이 매일의 양식을 받으며
외롭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니의 가족을 비롯하여 도시 대부분의 주민들은
헤즈볼라를 피해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한 상태이며
현재 남아 있는 이들의 대다수는 취약 계층과 노인들입니다.
베니가 가족들과 함께 대피할 수 있었지만
이 곳에 남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브라함 할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수프 키친에 미사일이 떨어졌을 때
수프 키친 건너편에 살고 있는
85세 아브라함 할아버지 집에도
미사일을 맞았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요리를 모두 끝내고 뒷정리 중이었던 오후 1시쯤 큰 폭발 소리가 났어요.저는 곧바로 대피소로 달려갔고 두 차례 큰 폭발이 일어난 후 전기도 완전히 나갔어요.경보가 끝난 후 밖에 나가보니수프 키친 건물이 미사일을 맞고 먼지로 뒤덮여 있었어요. 그때 건너편에 아브라함 할아버지 집에서 다급하게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여느 때와 같이 요리를 모두 끝내고 뒷정리 중이었던
오후 1시쯤 큰 폭발 소리가 났어요.
저는 곧바로 대피소로 달려갔고
두 차례 큰 폭발이 일어난 후 전기도 완전히 나갔어요.
경보가 끝난 후 밖에 나가보니
수프 키친 건물이 미사일을 맞고 먼지로 뒤덮여 있었어요.
그때 건너편에 아브라함 할아버지 집에서
다급하게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베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브라함 할아버지 부부는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니는 수프 키친에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수프 키친은 아브라함 할아버지와 같이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유일한 식량 공급원이에요.제가 떠나면 수프 키친 운영이 중단이 될텐데제가 어떻게 떠날 수 있겠어요?"
" 수프 키친은 아브라함 할아버지와 같이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유일한 식량 공급원이에요.
제가 떠나면 수프 키친 운영이 중단이 될텐데
제가 어떻게 떠날 수 있겠어요?"
매일 식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베니는 오늘도 혼자 묵묵히 요리를 합니다.
미사일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 북부 지역
기르얏 쉬모나(Kiryat Shmona)는 피해가 심각합니다.
이 작은 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은 도시 중심부로 대피했지만
집을 떠날 수 없는 노인들과 가족들
3,000여 명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습니다.
이들은 대피 사이렌이 울려도 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마을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습니다.
더펠로우십을 통해 음식과 식료품을 제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출신 옌타는 30여 년 전 이스라엘로 이주해
기르얏 쉬모나에 살고 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입니다.
어렸을 때는 전쟁 때문에 집을 떠나야 했지만,
92세가 된 지금은 집을 떠날 수 없습니다.
대피 사이렌이 울리면 대피할 시간이
15초 남짓 이기 때문에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얼마 전 베이트 바티야 무료 급식소가
미사일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이 너무 떨렸어요.
기르얏 쉬모나에서 매일 폭발이 일어나도
음식을 전해주니까 그런 사실을 미처 몰랐어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전쟁 중에도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게 해주어 정말 고마워요.
우리를 계속 도와주는 건 더펠로우십뿐이에요.”
지난 5월 5일, 기르얏 쉬모나를 향해 날아온
수십 개의 미사일 중 하나가 더펠로우십이 지원하고 있는
베이트 바티야 무료 급식소 지붕을 무너뜨렸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곳에서는 하루에
1,000인분의 식사를 매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미사일이 건물 내부에서 폭발하지 않았고
전기가 복구 되자마자 밤새 수백 개의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도 희망을 전하는
더펠로우십과 함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전해주세요. 💙
최근 더펠로우십 사업본부 직원은
러시아와 근접해 있는 우크라이나 수미를 방문했습니다.
수미 기차역은 러시아의 폭격을 받아 완전히 무너졌고
도시 곳곳이 파괴되고 남은 잔해 더미로 가득했습니다.
전쟁은 처참한 흔적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 현지 상황도 계속해서 힘들어지고 있는데요.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들은 전쟁 속에서
어떻게 일상생활을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홀로 지내는 노인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한데요.
더펠로우십은 전쟁 중에 대피와 생활에 취약한 노인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집으로 찾아가 안부를 물으며 돌보고 있습니다.
수미시 인근 작은 마을에 혼자 살고 있는
73세 발렌티나 할머니는 더펠로우십 직원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저를 위해 먼 곳까지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러시아가
할머니의 마을을 포함한 수미 도시 전체를 점령했습니다.
지금은 도시를 다시 되찾았지만
항상 러시아의 재침공에 대한 우려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러시아 세력이
우크라이나 내부에도 흩어져 있어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에
우크라이나 군인에게 8번이나
신원 확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
발렌티나 할머니는 20세기 초에 지어진
허름한 곳에서 평생 살고 있는데요.
집이 오래된 만큼 상태가 많이 열악하여
물이나 샤워 시설이 없어 씻기 어려운 등
기본적인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집은 늘 축축하고 추워서석탄과 나무를 사용해서 난방을 떼야 해요더펠로우십 덕분에 뗄감을 살 수 있었어요."
"이 집은 늘 축축하고 추워서
석탄과 나무를 사용해서 난방을 떼야 해요
더펠로우십 덕분에 뗄감을 살 수 있었어요."
전쟁은 할머니의 가족과의 따뜻한 일상을 앗아갔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은 지금 아픈 손자를 돌보며 함께 지내고 있는데요.
전쟁이 일어난 이후 지금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어
잘 지내는지 늘 걱정된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난 날, 러시아 군대가 우리 마을 주변에 포진해 있었어요. 모든 통신이 두절되어서 아들과 연락할 수 없었죠. 머릿속에 온통 아들과 손자가 살아있는지에 대한 걱정뿐이었어요.계속되는 전쟁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못 만나고 있는데너무 그리워요."
"전쟁이 일어난 날, 러시아 군대가 우리 마을 주변에 포진해 있었어요.
모든 통신이 두절되어서 아들과 연락할 수 없었죠.
머릿속에 온통 아들과 손자가 살아있는지에 대한 걱정뿐이었어요.
계속되는 전쟁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못 만나고 있는데
너무 그리워요."
최근에 건강이 많이 악화된 할머니에게
가족처럼 보살펴주는 더펠로우십이 있어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펠로우십이 없는 저의 노년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더펠로우십의 도움으로 저는 여러 차례 눈 수술을 받으며 치료를 할 수 있었고
먹을 것과 약 등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고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는 바우처도 지원해주었어요.
더펠로우십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외로움과 배고픔 속에 홀로 남겨진 이들에게
후원이 처음이신가요? 첫후원가이드
10월 7일 하마스 테러 이후
전세계에 반유대주의가 급증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보호 받지 못한 채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로의 이주(알리야)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지난 8월 1일 생존의 위협 속에 자유를 찾아
프랑스를 떠난 155명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도착했습니다!
이 중 85세 할머니부터 1세 증손녀까지
4대가 함께 이스라엘로 오게 된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만약 오래 살아온 나의 고향에서
‘한국인’임을 숨기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어떨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프랑스에 사는 유대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최근 프랑스 내 반유대주의가 점점 확산되면서
불안 속에 생활하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전쟁 중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이주를 결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85세 헨리에트 할머니 가족도 증손녀까지
총 4세대(9명)가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하였습니다.
손녀 레아(32세)는
‘프랑스에서 약학 대학을 졸업한 후
좋은 직업을 가지며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기에
프랑스를 떠나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프랑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늘 불안했던 삶에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20대인 손자들도 프랑스에서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불안함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테러와 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안전을 위해 정체성 숨기고 살아가야 했다’
고 말했습니다.
프랑스의 야아코브 랍비는
“반유대주의가 심해져 유대인 공동체가
큰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대로라면
유대인들이 10년 내에 모두 떠나야 할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10월 7일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테러 이후
프랑스 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들도 급증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프랑스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의
한 유대교 회당에 불을 지르거나,
파리올림픽에서 이스라엘 팀 경기 중에
관중석에서 반유대주의 행위를 하는 등
유대인들이 다양한 증오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반유대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증오 중 하나이며
안타깝게도 지금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 덕분에
많은 유대인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삶과 자유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이어
레바논 헤즈볼라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 요즘
우리는 혐오와 반유대주의로 시작된
홀로코스트 사건의 참혹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지난 6월 더펠로우십 국제본부 폴 라니어 이사장은
인간의 잔혹함과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홀로코스트의 상징이자 전세계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장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 영화지요.
라니어 이사장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체험한
생생한 역사적 현장이야기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기로 해요!
** 영상도 준비되어 있으니
하단에서 확인해보세요! **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2차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폴란드에 설립한 강제 수용소로,
유대인을 비롯한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으며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장소입니다.
라니어 이사장은 가장 오래된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
가스실을 사용하여 대량학살이 이루어졌던
가장 큰 제2수용소 비르케나우,
그리고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 모노비츠를 둘러보았는데요.
그곳에 남아 있는 수용소의 흔적들과
희생자들의 유품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사장은 이곳의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신께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신앙을 지켰던
흔적들을 보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라니어 이사장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꽉 찬 하루를 보냈는데요.
수용소에서의 역사적 순간들을 마주하며
'많은 생각이 들고 머릿속이 복잡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라니어 이사장은 더펠로우십의
모든 후원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라니어 이사장의 아우슈비츠 방문기를
🔽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
영상보기
매일 계속되는 레바논 헤즈볼라의 폭격으로
이스라엘 북부 지역이 위기 속에 있습니다.
하루빨리 평화로운 일상이 되찾아지도록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후원참여하기
우크라이나 리비우에 사는 리우보브는
세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21살인 큰아들 이반은 여러가지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걷지도 못해 항상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주변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리우보브는
늘 집에서 아들의 병간호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일을 하지 못하고 매달 이반의 장애 수당으로
네 가족이 겨우 생활해왔는데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는 듯했던 그녀가
드디어 위안과 쉼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작은 나눔이 리우보브와 이반 가족에게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지 함께 확인해보아요!
올해 44세의 싱글맘 리우보브는 아픈 큰아들 이반(21세),
어린 안톤(10세), 리오라(2세)와 함께 살고 있는데요.
큰 아들 이반은 신체 기능을 조절할 수 없어 걷지도 못하며
선천성 심장병, 간질, 운동 장애 등의
여러 질병과 장애을 가지고 있어
늘 곁에서 돌봄이 필요합니다.
현재 가족이 살고 있는 지역은 너무 낙후되어
재개발이 필요한 상태지만 전쟁 중이라
국가로부터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족의 수입은
이반의 장애 수당(월 $183, 한화 약 25만원)과
소정의 돌봄 수당이 전부인데요.
네 가족의 생활비로도 턱없이 부족하기에
집수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리우보브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에서
홀로 자녀들을 돌보는 엄마가
처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전시 상황에서 홀로 세 아이들과
버티기 힘들었던 엄마 리우보브는
도움의 손길을 전해준
더펠로우십 후원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리우보브 가족이
생활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음식과 약 등을 구입할 수 있는 바우처,
아이들 옷과 학용품 그리고 아픈 이반을 함께 돌봐 주는
케어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오늘, 누군가의 삶에 희망의 빛이 됩니다.
함께라면 우리는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의 소중한 후원으로 변화가 시작됩니다.
후원참여하기
하마스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 남부 국경 지역에 사는 가족들은
한동안 아기들을 위한 음식, 기저귀 등
기본적으로 필요한 유아 용품들을 살 수 없었습니다.
생계를 잃은 많은 가족들에게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더펠로우십은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을 찾아
아기의 나이에 따라 적절한 음식과 필요 물품들을 담은
유아용 더펠로우십박스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오른쪽 몸이 마비되어 장애를 앓고 있고,
그래서 계속 약을 복용해야 해요.
2살 짜리 딸과 이제 막 1살이 된 아들이 있는데
수유를 할 수 없어서 아이들을 위한 분유가 필요하죠.
더펠로우십이 보내주는 분유와 기저귀는
우리 가족에게 생명줄과 같아요.
전쟁 중에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더욱 고맙습니다."
- 나탈리 (Natalie)
전쟁이 시작된 지
9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과 아기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어린 아이와 함께 전쟁을 겪고 있는
가족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세요!
지난 7월 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수십 발의 로켓이 떨어져 어린이 병원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키이우뿐만 아니라 드니프로, 크리비리흐,
슬로비안스크 등 여러 도시가 공격을 받아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수백만 명의 전쟁 피해자들,
특히 심신이 취약한 어린아이와 가족들을 위해
구호 물품과 음식, 의약품, 생필품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더해주세요!
"더펠로우십은 후원자님의 따뜻한 후원으로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수만 명의 저소득층 빈곤 가정, 어린이, 장애인 및 노인들의
안정적인 생계를 위해
음식과 약품의 제공뿐 아니라
가정 방문 및 치료 지원 등으로 돕고 있습니다."
올해 80세 그리고리 할아버지는
2022년 아내의 죽음과 전쟁이라는
큰 재난을 연달아 두 번이나 겪으며
한 동안 삶의 의욕을 잃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내와 함께한 소중한 사진들을 보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계속되는 폭격 소리에 두려움에 휩싸였고,
물가 상승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고 합니다.
더펠로우십 협력기관인 오데사의 헤세드 센터에서
그리고리 할아버지를 방문해
"앞으로도 계속 돌봐줄 것"이라며 격려해주었고
이를 통해 할아버지는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또한, 할아버지 삶에 큰 힘이 된 존재는
돌보미인 '나타센카' 입니다.
할아버지는 그녀가 자신의 딸과 같다고 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그리고리 할아버지가
홀로 외롭게 어려운 시기를
보내지 않도록
의료 서비스, 절기 음식,
온라인 커뮤니티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특별 스마트폰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더펠로우십의 지원 덕분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도움을 요청할 곳이 있고
더펠로우십에서 제공한 은행 카드로
필요한 음식과 약을 살 수 있게 되었다"며
한국 후원자들께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더펠로우십 글로벌 CEO 야엘 엑스타인이
연일 이어지는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키르얏 시모나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페레츠 가족을 만나 깊은 위로를 나누었습니다.
대피소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페레츠 가족은
할머니와 손자까지 3대가 지내고 있는데
언제 이 폭격이 끝날 지 몰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긴급 대피소 키트'를
통해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여러분의 따뜻한 후원이 페레츠 가족들에게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지 확인해보세요!
헤즈볼라가 레바논 국경지역과 근접해있는
이스라엘 북부지역을 향해
3,000발 이상의 로켓을 발사를 하면서
북부 지역의 안보 상황이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또한 최근 이스라엘군에 의해
헤즈볼라 최고위급자가 사망하면서
보복성으로 이스라엘 북부에 로켓과 드론을
무자비로 공격하면서 이스라엘-레바논의
전면전에 대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요.
레바논 국경에서 2km 떨어진
북부 도시 키르얏 시모나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아
주민 23,000명 중 80%가 대피를 한 상황입니다.
매일 계속되는 로켓 공격으로 가족들은
몇 주 동안 대피소에만 고립되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패니 할머니는
"이곳에 방치된 느낌이에요.
너무 외로워요.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아요.
매일 아침 제 딸이 로켓 공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가 먹을 것을 사 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가족 모두가 굶게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엄마 태미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특히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조그만 아이들이 폭격 소리,
사이렌 소리 등으로 인한
전쟁의 공포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그 공포를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만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원자님의 따뜻한 후원으로
더펠로우십이 페레츠 가족에게
대피소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 아이들 장난감 등을 담은
긴급 구호 키트와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더펠로우십과 많은 후원자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더펠로우십은 이스라엘 전쟁 속에
대피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는 사람에게
협력기관 "수프 키친"에서
조리한 따뜻한 음식을 나누는 일을 매일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레바논과 근접해 있는
이스라엘 최북단 도시 기르얏 쉬모나의
베이트 바트야 수프 키친은
헤즈볼라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요리사 베니는 끝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이 곳을 지키고 있는데요.
덕분에 많은 이들이 매일의 양식을 받으며
외롭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니의 가족을 비롯하여 도시 대부분의 주민들은
헤즈볼라를 피해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한 상태이며
현재 남아 있는 이들의 대다수는 취약 계층과 노인들입니다.
베니가 가족들과 함께 대피할 수 있었지만
이 곳에 남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브라함 할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수프 키친에 미사일이 떨어졌을 때
수프 키친 건너편에 살고 있는
85세 아브라함 할아버지 집에도
미사일을 맞았습니다.
베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브라함 할아버지 부부는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니는 수프 키친에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식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베니는 오늘도 혼자 묵묵히 요리를 합니다.
미사일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 북부 지역
기르얏 쉬모나(Kiryat Shmona)는 피해가 심각합니다.
이 작은 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은 도시 중심부로 대피했지만
집을 떠날 수 없는 노인들과 가족들
3,000여 명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습니다.
이들은 대피 사이렌이 울려도 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마을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습니다.
더펠로우십을 통해 음식과 식료품을 제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출신 옌타는 30여 년 전 이스라엘로 이주해
기르얏 쉬모나에 살고 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입니다.
어렸을 때는 전쟁 때문에 집을 떠나야 했지만,
92세가 된 지금은 집을 떠날 수 없습니다.
대피 사이렌이 울리면 대피할 시간이
15초 남짓 이기 때문에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얼마 전 베이트 바티야 무료 급식소가
미사일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이 너무 떨렸어요.
기르얏 쉬모나에서 매일 폭발이 일어나도
음식을 전해주니까 그런 사실을 미처 몰랐어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전쟁 중에도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게 해주어 정말 고마워요.
우리를 계속 도와주는 건 더펠로우십뿐이에요.”
지난 5월 5일, 기르얏 쉬모나를 향해 날아온
수십 개의 미사일 중 하나가 더펠로우십이 지원하고 있는
베이트 바티야 무료 급식소 지붕을 무너뜨렸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곳에서는 하루에
1,000인분의 식사를 매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미사일이 건물 내부에서 폭발하지 않았고
전기가 복구 되자마자 밤새 수백 개의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도 희망을 전하는
더펠로우십과 함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전해주세요. 💙
최근 더펠로우십 사업본부 직원은
러시아와 근접해 있는 우크라이나 수미를 방문했습니다.
수미 기차역은 러시아의 폭격을 받아 완전히 무너졌고
도시 곳곳이 파괴되고 남은 잔해 더미로 가득했습니다.
전쟁은 처참한 흔적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 현지 상황도 계속해서 힘들어지고 있는데요.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들은 전쟁 속에서
어떻게 일상생활을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홀로 지내는 노인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한데요.
더펠로우십은 전쟁 중에 대피와 생활에 취약한 노인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집으로 찾아가 안부를 물으며 돌보고 있습니다.
수미시 인근 작은 마을에 혼자 살고 있는
73세 발렌티나 할머니는 더펠로우십 직원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러시아가
할머니의 마을을 포함한 수미 도시 전체를 점령했습니다.
지금은 도시를 다시 되찾았지만
항상 러시아의 재침공에 대한 우려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러시아 세력이
우크라이나 내부에도 흩어져 있어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에
우크라이나 군인에게 8번이나
신원 확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
발렌티나 할머니는 20세기 초에 지어진
허름한 곳에서 평생 살고 있는데요.
집이 오래된 만큼 상태가 많이 열악하여
물이나 샤워 시설이 없어 씻기 어려운 등
기본적인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할머니의 가족과의 따뜻한 일상을 앗아갔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은 지금 아픈 손자를 돌보며 함께 지내고 있는데요.
전쟁이 일어난 이후 지금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어
잘 지내는지 늘 걱정된다고 합니다.
최근에 건강이 많이 악화된 할머니에게
가족처럼 보살펴주는 더펠로우십이 있어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펠로우십이 없는 저의 노년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더펠로우십의 도움으로 저는 여러 차례 눈 수술을 받으며 치료를 할 수 있었고
먹을 것과 약 등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고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는 바우처도 지원해주었어요.
더펠로우십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